'따로 노는' 보건당국, 업계 혼란만 부추긴다

천승현 기자I 2013.04.10 08:45:16

업계 "시판 후 조사 건수 제한 규정, 의견수렴 없이 포함"
복지부 "입안예고에는 없었지만 충분한 절차 거쳐"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신약에 대한 부작용 조사 건수를 제한하는 규정은 보건당국 내부에서도 혼선을 빚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리베이트 근절에 무게를 두고 있는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약품 안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 쪽은 ‘그것 만큼만 하라’는 것이고, 또 한 쪽은 ‘그것 이상을 하라’는 형국이다. 제약업계에서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거냐”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특히 시판 후 조사의 건수 제한은 입안예고에서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설 과정이 불투명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복지부가 지난 2010년 9월 입안예고한 약사법시행규칙 개정안에 시판 후 조사로 제약사가 의사 등에 제공하는 사례비는 건당 5만원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공포된 개정 약사법시행규칙에는 ‘사례비를 줄 수 있는 사례보고서의 개수는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의 최소 개수로 한다’는 내용의 조사 건수를 제한하는 규제가 새롭게 추가됐다. 신약의 경우 사실상 3000명을 초과하는 시판 후 조사는 리베이트로 간주하겠다는 내용이 입안예고에는 없었음에도 개정 약사법시행규칙에는 반영됐다.

시판 후 조사 허용 범위에 대한 약사법시행규칙 입안예고와 개정 규칙 비교
이에 반해 식약처의 ‘신약 등의 재심사 기준’에는 여전히 ‘신약은 3000명 이상, 개량신약은 600명 이상’ 부작용 조사를 기한내 실시토록 규정하고 있다.

업계에서 “현재 시판 후 조사는 부작용 점검 대상 3000명을 못 채워도 처분을 받고, 3000명을 초과해도 리베이트로 행정처분을 받는 불합리한 제도로 전락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식약청의 규정을 적용하면 신약 발매 이후 6년내 최소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작용 조사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제조업무정지 3개월 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복지부의 리베이트 규정에서는 3000명을 초과하는 부작용 조사에 대해 제약사가 사례비를 지급하면 판매금지 1개월 처분을 받게 된다.

실제로 시판 후 조사 건수 제한에 대한 검토 과정에서 식약처는 복지부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식약처는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위해 부작용 조사는 가급적 많이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당시 충분한 의견 수렴 절차 없이 시판 후 조사 건수에 대한 규제가 갑자기 포함됐다”면서 “부작용 조사의 대상을 제한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으며 리베이트를 끊자고 부작용 점검을 금지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상시험을 주도하는 의사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부작용 점검을 많이 하면 리베이트로 간주하겠다는 것은 정부의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다”면서 “처방을 대가로 한 불법행위는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지만 국민 건강을 위한 부작용 조사를 제한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최소 건수 이상으로 진행하는 시판 후 조사는 사례비를 지급하지 말라는 내용일 뿐 건수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당초 입안예고에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검토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판단, 해당 규제를 삽입했고 의견 수렴 절차와 법제처의 최종 심의를 거쳤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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