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원익 기자]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두고 청와대와 야당의 ‘강대강(强對强)’ 대치가 지속되면서 정국 경색이 심화되고 있다. 대국민 담화라는 강수(强手)로 인해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정가에선 이 같은 상황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집권 2기와 유사하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2004년 재선에 성공한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집권 초 사회보장연금 개혁 추진, 불법 이민 규제 강화 등으로 야당인 민주당과 사사건건 대립했다. 그 결과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실종되면서 지지율하락을 겪으며 임기 내내 고전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향후 박근혜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의회에서 정치현안이 조율되도록 정치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시, 재집권 후 국정 드라이브..朴 ‘국민은 내 편’
부시 전 대통령이 재집권 후 국정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4년 전 앨 고어 민주당 대선 후보와 박빙 승부 끝에 가까스로 대통령이 된 것과 달리, 중간 평가 성격을 띤 재선에 성공하며 정통성을 확보한 셈이다. 여당인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것도 큰 힘이 됐다. 이 때문에 재선 당시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할 장치가 없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한 바로 다음날 각료회의 주재 후 기자회견을 열고 “재선 성공으로 정치적 자산을 얻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의 경우 2007년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 아깝게 패배했지만 두 번째 대권 도전에서 당당히 승리하며 자신만의 정치적 자산을 구축했다. 이 때문에 ‘국민이 내 편’이라는 생각으로 야권을 압박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이란 단어를 25회나 사용하며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다수당이라는 점도 유사하다. 친박(親朴)계 핵심으로 꼽히는 이한구 의원이 원내대표를 맡고 있고 당 지도부도 친박계 일색이다.
◇‘원칙 고수’ 스타일..고비마다 승부수
정치권에선 원칙을 고수하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하고 있다. 과거 정치적 고비마다 배수진을 치고 주장을 관철시켰던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소수자 입장에선 정면돌파가 효과적일 수 있지만 반대파까지 끌어안아야 할 국가 수반으로서는 적절치 못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박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이던 지난 2005년 말 열린우리당이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자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장외 투쟁에 나서 재개정을 이끌어 낸 바 있다. 2009년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당내 주류인 친이(親李)계가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자 원안 고수를 주장했고 결국 국회에서 수정안은 부결됐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실시한 대국민 담화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 ‘물러설 수 없다’ 등의 강경한 표현을 사용하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급락한 부시 지지율..정국경색 장기화 우려
문제는 반대파를 끌어안지 못할 경우 지지율이 하락해 국정 수행이 어려워 질 수 있다는 점이다. 부시 전 대통령의 경우 취임 첫 해인 2005년 지지율이 35%까지 급락했다. 집권 1기 한때 90%대를 기록한 지지율을 감안하면 급전직하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집권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50%대에 머물고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5일 “박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 집권 2기를 거울로 삼아 여의도 정치가 복원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국민 여론과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도 세대적 균형감을 발휘해 20~30대의 무조건적 ‘비토(veto)현상’에 대한 대비와 극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