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취임 후 석 달도 되지 않아 시험대에 올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특혜 의혹을 둘러싸고 여야의 충돌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공직자의 행동강령 준수 여부와 부패·비리 여부를 가름하는 권익위의 판단이 사건을 좌우하는 기준이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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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굵직굵직한 길목 속에서 전 위원장은 스스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도전해 이를 쟁취하는 ‘악바리’로 평가받는다.
치과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그만두고 사법시험에 도전해 변호사가 됐고, 혈액제제로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혈우병 환자들의 집단소송을 담당해 10년 만에 승소를 거둬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환경위원회 및 여성인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8대 때 통합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왔다.
19대 총선에서는 강남을 지역을 신청했으나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에 밀려 공천에서 떨어졌다. 대신 당은 그를 송파갑에 전략공천했으나 그는 ‘금배지를 사냥하기 위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는 않겠다’며 출마를 고사했다. 4년 뒤 그는 강남을 지역에 다시 도전장을 던졌고,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 이후 24년만에 강남구에 당선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됐다.
화려한 경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정치인 전현희’가 평가받은 것은 택시·카풀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이다. ‘카풀 전면 금지’를 주장하는 택시업계와 새로운 산업을 위해서는 규제를 풀어달라는 산업계의 갈등이 극에 부닥친 상황에서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전 위원장은 2018월 11월 TF장을 맡았다.
처음부터 고생길이 뻔히 보이는 자리였다. 협상 초기부터 ‘카풀 전면 금지’를 주장한 택시업계는 전 위원장에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대집회에 그가 얼굴을 내밀자 집회 참가자들이 ‘물러나라’며 물병을 던지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카풀 금지’를 외치며 두 명의 분신 사망자가 나왔다. 택시와 카풀을 지지하는 양쪽으로부터 ‘문자폭탄’에 시달려 전 위원장은 휴대폰 번호를 명함에서 지우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 사건을 해결한 것은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흰 눈으로 바라보던 택시업계도 “전현희 의원이 농성장에 찾아온 횟수 기록을 봤더니 148번을 참여했더라. 감동했다”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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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위원장이 지난 21대 총선에서 박진 국민의힘(전 미래통합당) 의원에게 패하고 두 달 만에 권익위원장이 됐을 때, 정치권과 언론은 그를 낙하산으로 봤다. 본인 역시 권익위의 일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고 인정한 바 있다. 다만 이에 대해서 마냥 비판의 목소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 위원장이 보여준 행보가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 갈등을 해소하는 권익위원장으로서 적임자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권익위 직원들도 “기왕 낙하산이면 힘센 낙하산이 좋다”며 전 위원장이 온 뒤로 권익위의 존재감이 올라갔다며 어깨를 으쓱했던 시절도 있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인 출신 권익위원장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정권 핵심 인물의 부패 여부가 도마 위에 올라 정치적 중립성이 무엇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시기, 정치인 출신 수장은 역으로 주홍글씨가 됐다. 야당은 여당 정치인 출신인 전 위원장이 정권 비호에 나서며 추 장관에 유리한 방향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권익위는 주무장관인 추 장관의 가족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데 대해 “구체적 직무 관련성이 없다”(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답변자료)고 판단했다. 반면 지난해 10월 조국 전 장관과 관련해선 “직무 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이태규 국민의당 의원 답변자료)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왜 같은 법무부 장관 가족에 관한 수사인데 박은정 전 권익위원장 재임 당시와 현 유권해석이 다르냐는 비판에 권익위는 같은 기준을 적용했다고 항변한다. 지난해 10월에는 시간이 촉박해 법무부가 검찰 수사에 수사 지휘나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던 반면, 이번에는 검찰에 해당 사실에 대해 보고를 하거나 지휘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이번 유권해석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추 장관이 지난 5월 아들 사건을 수사 중인 동부지검 관계자들을 만찬에 초청하고 고기영 전 동부지검장을 법무부 차관으로 승진시키는 등 인사권을 통해 검찰에 충분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상황에서 권익위의 이번 유권해석이 너무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적극적인 행정만이 부패를 방지한다”는 그의 평소 소신과도 배치되는 부분이다.
권익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대한민국의 얼마나 공정한가에 대한 질문의 답과도 연결된다. 전 위원장의 시험대가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성의 시험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