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인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무리한 연명치료를 하기 보다는 대부분 죽음을 수용하고 남은 여생을 정리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크게 늘면서 ‘웰 다잉(well-dying)’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된 영향으로 해석된다.
◇“고통스러운 연명 보다 편안한 죽음 낫다”
27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활성화 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10명 중 8명은 갑작스러운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되면 “죽음을 수용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답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만 65세 이상 노인 300명을 대표 집단으로 선정해 진행했다.
설문에 참여한 노인 중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마지막까지 치료를 하겠다’고 대답한 비중은 10명 중 1~2명(요양시설 노인 17.3%·재가노인 12.7%)에 불과했다.
이와는 달리 30대와 40대는 ‘남아있는 가족의 처지’를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으로 꼽았다. 설문에 응한 30·40대 중 이들의 비중은 각각 29.6%, 31.8%를 차지했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매년 우리나라 국민의 약 27만명이 죽음을 맞이하고 130만 명의 사망자 가족들이 고통을 받을 정도로 죽음으로 인한 사회적 후유증이 크다”면서 “외국과 같이 최근 국내에서도 품위 있게 죽는 ‘웰 다잉’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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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으로 수명을 연장하기보다는 편안히 죽겠다’는 인식이 확산된데는 길어진 평균수명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의학의 발달→ 평균수명 연장→ 은퇴 이후 늘어난 노년 시간’이 ‘죽음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은 2014년 기준 82.4세. 10년 만에 수명이 6년이나 늘었다.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통받는 기간을 제외한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건강수명은 73세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20년 후에는 평균수명이 100세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앞으로 ‘웰 다잉’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란 전망이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평균 수명이 80세가 넘으면서 과거에 비해 사람들의 전체 삶의 스케줄에서 경제활동 기간은 짧아지고, 상대적으로 은퇴하고 여생을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며 “단순히 오래 살기보다는 노후를 즐겁게 보내겠다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말했다. 이어 백 교수는 “각종 의학정보가 일반인들에게 많이 노출되면서 연명 치료과정에서 환자가 겪는 고통과 남은 가족의 경제적 부담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도 연명치료 치료를 꺼리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웰다잉(well-dying)이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말한다. 죽음을 앞두고 무의미한 연명 치료에 의존하기 보다는 남아있는 삶을 정리하고 품위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존엄을 지키며 죽는 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며 올 들어 연명의료 중단 허용과 호스피스 강화의 내용을 담은 ‘웰다잉법’이 국회를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