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관가와 정치권에 따르면 오는 8일 열리는 고위 당정(국민의힘·정부)협의회에서 추경 논의는 테이블에 오르지 않을 전망이다. 여당이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추경 논의는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발행 예산확보 등을 위한 신속한 추경 편성을 주문하고, 김동연 경기지사도 민생경제 안정을 위해 30조원 이상의 ‘슈퍼 추경’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는 등 야당을 중심으로 추경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으나 당정은 ‘예산 조기집행’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유지 중이다.
|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추경 예산 재원은 대부분 나랏빚을 내어 충당한다. 빚내는 만큼 필요한 곳에 핀 포인트로 투입해야 한다”며 “잘못된 추경은 자칫 재정 건전성 악화로 이어져 국가 신용 등급 하락 등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도 추경에 소극적인 분위기다. 추경 재원을 마련할 때는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 내부거래 △세계잉여금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국채 발행 등을 고려한다. 그러나 작년 한 해 30조원 안팎의 ‘세수결손’이 예상되는 상황으로, 결손을 막는 재원을 우선 활용해야 해 선택지는 ‘국채 발행’뿐이라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세계잉여금과 외평기금은 지난 2년간 막대한 세수 결손을 메우는 데 쓰면서 이미 바닥을 드러낸 상태다. 작년 세수결손에 쓸 재원은 세계잉여금은 아예 없고 외평기금은 2022년 111조원에서 작년 69조원으로 급감했다. 정부는 이에 올해 환율안정을 위한 20조원 한도의 원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발행할 계획이다.
결국 추경을 위해 지출을 늘리려면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려야 한다. 문제는 이 경우 민간에서 빌릴 수 있는 자금이 줄어들어 이자율이 상승하고 민간의 투자와 소비가 줄어드는 구축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상승해 이를 주요 지표로 삼는 신용평가사에서 국가 신용등급을 떨어뜨릴 우려도 있다. 정부로선 일명 ‘재정 딜레마’를 겪는 셈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2015년과 2016년 GDP 대비 부채비율은 국가재정법상 국가채무(D1) 기준 34%대였으나 2019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2023년말 기준 46.9%까지 올랐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자기금을 일반회계로 전용해 재원을 활용하면 재정건전성에도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 좋지만 남는 기금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추경 편성 시 국채 발행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국채 금리 인상이나 국가신용등급 하락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국가재정법상 추경 사유는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현재 경제 상황이 법적 요건을 충족하는지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선심성 슈퍼 추경은 나랏빚만 늘리고 금리가 올라 민간의 투자와 소비를 위축해 오히려 내수 부진을 장기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매번 세수결손을 메우기 위해 공자기금, 외평기금 등을 활용했는데 이제는 이마저도 한계를 드러냈다”며 “대규모 국채발행으로 금리가 상승해 기업 투자 위축과 국가신용등급마저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기재부가 확정한 올해 ‘국고채 발행계획’에 따르면 국고채 총발행 한도는 197조 6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 가운데 순발행 한도만 80조원 규모다. 나랏빚을 늘리는 이른바 ‘적자국채’만 80조원에 달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추경이 20조원 규모로 확정되더라도 적자국채는 100조원까지 불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