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 토대로 과거 모습 반영해 복원
전시실·도서 자료실·행사 공간 마련
"100년 전 근대 외교의 시작·전개 돌아보길"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흰색 바탕에 붉은 동그라미가 있어야 할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를 먹으로 덧칠해 그려넣었다. 여기저기 얼룩이 지고 빛이 바랜 태극기는 1919년 독립을 외치던 그날의 항일의지와 애국심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2009년 5월 26일 서울 진관사 칠성각의 불단과 벽체 사이에서 발견된 ‘서울 진관사 태극기’(보물)다. 왼쪽 윗부분은 끝자락이 불에 타 손상됐고, 여러 곳에 구멍이 뚫린 흔적이 있어 만세운동 당시 혹은 이후 현장에서 사용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진관사 태극기를 덕수궁 돈덕전 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대한제국의 외교기관이었던 덕수궁 돈덕전이 100년 만에 전시 공간으로 되살아났다. 대한제국 외교의 중심 공간이었던 역사적 의미를 살리면서도 내부 공간을 전시실과 도서 자료실, 문화 행사 공간으로 꾸며 활용도를 높였다. 박상규 학예연구사는 “100년 전 한국 근대 외교의 시작과 전개를 돌아보면서 존중, 사랑, 협력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 100년 만에 재건된 덕수궁 돈덕전(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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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일제가 철거…“역사 고증으로 재탄생”
돈덕전은 덕수궁의 또 다른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 뒤편에 있는 건물이다. 고종이 1902년~1903년 즉위 40주년 칭경예식에 맞춰 서양식 영빈관으로 지었다. 서양열강과 대등한 근대국가로서의 면모와 주권 수호 의지를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1920년대 일제가 철거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1933년에는 그 자리에 어린이 유원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돈덕(惇德)’은 “덕 있는 이를 도탑게 해 어진 이를 믿는다”라는 의미로 중국 고대 문헌 ‘서경’의 ‘순전’에서 유래했다. ‘덕이 있는 자’는 교류하며 신뢰를 쌓아가야 할 여러 국가를 가리킨다. 이들을 대접하는 장소가 바로 돈덕전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한 화려한 건축양식으로 세워졌고 1층에는 알현실, 2층에는 침실이 자리했다. 황제는 이곳에서 외교사절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풀며 외국 국빈의 숙소로 사용했다.
| ‘덕수궁 돈덕전’ 내부의 상설전시실(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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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2015년부터 다양한 고증자료를 수집해 2016~2017년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2019년 시작한 재건 공사를 지난해 12월 마치고 마침내 문을 열었다. 다시 돌아온 돈덕전의 외관은 붉은 벽돌과 푸른 창틀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발굴·사진자료를 토대로 청록색 오얏꽃 벽돌 문양 등 최대한 옛 모습을 반영해 복원해냈다. 오얏꽃 문양은 대한제국의 국장이다.
상설전시실I과 기획전시실로 구성된 1층에서는 고종의 칭경예식 등 당시 대한제국을 담은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한국 근대외교를 주제로 꾸며진 2층 상설전시실Ⅱ에는 외교의 중요한 사건들과 함께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 내부대신 민영환, 조선말 외교관 민영찬 등 자주 외교를 지키려 노력했던 주요 인물들을 디지털 액자로 소개한다. 아카이브실에서는 각종 도서와 영상자료 열람, 학술회의, 소규모 공연이 가능하다. 박 학예사는 “아카이브실은 도서실 형태지만 각종 행사가 가능하도록 꾸며 다른 역사박물관과의 차별화를 꾀했다”고 설명했다.
| ‘덕수궁 돈덕전’ 내부의 아카이브실(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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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돈덕전의 모습(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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