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스푸트니크1호 발사로 큰 충격을 받은 미국은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하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으며 기술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패권 경쟁의 과정에서 두 기관은 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과 GPS, 스텔스 등 다양한 기술들을 개발했고 이는 항공우주산업, 인터넷기업 등 다양한 산업의 기반이 되는 동시에 투자의 기회도 만들었다.
플레이어와 분야가 바뀌었을 뿐 현재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독자적인 내연기관 자동차 개발에 어려움을 겪은 중국은 국가 주도로 전기차를 차세대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미국은 전기차 밸류체인에서 패권을 잡아가는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인프라 투자와 일자리 법안,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 법안) 등이 대표적인 예다.
보조금과 인프라 투자 같은 국가 주도의 지원책과 함께 민간기업들의 생산설비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으로 미국의 힘을 기르는 한편 동맹국과 연합해 중국에 대항하는 것이 바로 이 법안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미국의 전기차 시장은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투자의 기회라는 관점에서 이를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과거 TV, 휴대폰 등 신기술의 대중화 과정을 돌아보면 최초 도입으로부터 일정 시간이 흘러 특정 시점에 도달하는 순간 폭발적으로 확산하는 시기가 존재한다.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노르웨이, 중국 등 전기차 비중이 높은 나라들에서 전기차 침투율이 5% 수준을 넘어설 때부터 폭발적인 성장이 일어났다. 미국의 전기차 침투율은 2021년 4분기에 갓 5%를 넘어섰다. 따라서 앞으로 성장률이 가파르게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경우 다른 국가와 달리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와 픽업트럭이 전체 차종에서 70%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승용차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용량의 배터리가 탑재된다. 따라서 같은 수준의 전기차 침투율 확대에도 미국 전기차 시장의 성장은 이차전지에 대한 수요를 가파르게 상승시킬 것이다. 이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수익성에 영향을 미쳐 해당 기업의 주가에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이 주도해온 2022년까지의 전기차 및 배터리 시장과 달리 미국 주도가 유력한 미래의 시장은 한국 이차전지 업계의 성장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법안의 수혜를 받으려면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 등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일정 부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 배터리를 배제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투자 결정에 보수적인 일본 기업이나 배터리 기술과 제조 경험이 부족한 유럽 기업보다는 한국의 이차전지 업체들이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이차전지 산업은 지금부터 본격적인 레이스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고 이를 투자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직접 투자가 부담스럽다면 ETF(상장지수펀드)를 활용해 보자. 한국시장에는 완성 셀 3사를 높은 비중으로 편입하고 있는 ETF가 상장돼 있다.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 등을 생산하는 소재 업체들까지 골고루 편입해 한국 이차전지 밸류체인 전체에 투자할 수 있는 ETF도 존재한다. 나아가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이차전지 산업 및 전기차, 자율주행 등 다양한 파생 산업에 투자하고 싶은 투자자라면 전기차 산업에서 핵심 위치에 있는 기업들을 선별 투자하는 액티브 펀드도 좋은 대안이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각국의 고강도 긴축정책으로 경기침체를 넘어 경제위기까지 우려하는 시기에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위기 이후의 패러다임 전환이 새로운 투자 기회를 열어왔다.
닷컴버블은 인터넷기업에서 금융주로의 패권 전환을 이끌었고 금융위기는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플랫폼 기업들을 주도주로 전환시켰다.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공급망 악화 등이 촉발한 인플레이션은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의 약세장을 만들어냈고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은 정체돼 있다.
이번 위기 이후의 패러다임 전환은 주요 강국이 패권을 다투는 신에너지 기술, 특히 전기차 산업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고 그 수혜는 한국의 이차전지 밸류체인으로 향할 공산이 크다. 새로운 성장의 출발점에서 퀀텀점프를 앞둔 한국의 이차전지 산업을 미래의 투자 기회로 눈여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