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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의 경세제민]고용절벽과 부도의 덫에 걸린 경제

신하영 기자I 2021.11.11 08:24:07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고려대 16대 총장] 대학생 10명 중 6명 이상이 구직을 단념하고 1명만 강한 취업의지를 보이고 있다. 30대와 40대의 구직 단념자도 2018년부터 급격히 늘어 연평균 증가율이 10%를 넘는다. 50대와 60대 이상의 기간제 일자리가 늘어 60%수준의 고용율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다. 경제가 본연의 기능인 고용창출기능을 잃자 정부가 임시 일자리를 만들어 억지로 버티는 형국이다.

최근 한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대학 3·4학년 재학생과 졸업생 27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65.3%가 사실상 구직을 포기한 상태다. 구직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33.7%, 의례적으로 하고 있다 23.2%, 쉬고 있다는 응답이 8.4%였다.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는 대학생은 9.6%에 불과하다. 동 연구원이 통계청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에서도 30대·40대의 고용률은 지난해 76.2%를 기록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8개국 중 30위다. 30대와 40대의 구직 단념자는 2015년 12만9000명에서 지난해 17만1000명으로 증가했다.

취업자들의 고용구조도 극히 불안하다. 전체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이 38.4%로 역대 최대치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 2099만2000명 가운데 비정규직이 806만6000명이다. 이 중 노인일자리 같은 기간제 비정규직이 453만명을 차지한다. 지난해에 비해 정규직 노동자가 9만4000명 줄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64만명 늘었다. 비정규직 증가 64만명 중 50대와 60대가 각각 12만4000명과 27만1000명을 기록했다. 60대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중은 73.7%나 된다.

취업절벽 현상을 겪고 있는 20대는 천신만고 끝에 취업을 해도 비정규직이 많다. 20대 임금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40.0%로 50대의 35.9%보다 높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함은 물론 임금도 낮다.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176만9천원으로 정규직의 333만6천원의 거의 절반 수준이다.

우리경제에 고용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6월 말 현재 가계부채가 1806조원을 기록해 GDP대비 비율이 104.2%에 달한다. 일본 63.9%, 미국 79.2%에 비해 현격히 높다. 최근 고용이 불안하고 소득이 감소해 상환능력이 떨어지자 가계부채의 연쇄부도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현행 0.75%에서 계속 올릴 전망이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대출규제를 강화했다. 정부는 내년 1월부터 가계대출 연간 증가율을 6%에서 4~5%로 낮추고 개인별 총 대출금액이 2억원이 넘으면(7월부터는 1억원) 연간 원리금이 연 소득의 40%(제2금융권 50%)를 넘어설 수 없게 했다. 시중금리가 빠른 속도로 올라 대출자들의 가계부채 상환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전망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경우 이미 두 달 새 1%포인트 뛰어 5% 수준이다. 기준금리 인상과 대출규제 정책이 금융의 정상적 흐름을 막아 가계부채를 줄이려다가 오히려 연쇄부도를 촉발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고용불안과 가계부채의 고통을 집중적으로 받는 큰 저소득층이 설상가상으로 물가상승의 덤터기까지 쓰고 있다. 지난 달 소비자 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2% 상승해 9년9개월 만에 가장 높다. 국민들이 실제 체감하는 물가는 더 올랐다. 구매빈도가 높고 지출비중이 큰 품목을 대상으로 계산하는 생활물가지수가 지난달 전년 동기 대비 4.6% 상승해 10년2개월 만에 최고치다. 식료품·에너지·집세 등이 급격히 올라 생활고를 가중하고 있다. 이러한 물가가 저소득층에서 더 많이 오르고 있다. 보험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월과 올해 9월 사이 소득분위별 물가상승률을 산출한 결과 소득분위가 낮을수록 물가상승률이 높다. 소득이 가장 낮은 하위 20%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3.6%로 소득이 가장 높은 상위 20%의 물가상승률 2.66%에 비해 0.94%포인트나 높다.

현재 우리경제는 고용절벽·가계부채·물가상승의 3중 덫에 걸려 언제 부도위기에 처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더구나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집이 없는 서민들은 전월세 가격이 올라 삶의 최소조건인 주거까지 불안하다. 상황이 악화할 경우 빈곤과 부도, 사회갈등과 혼란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경제가 이와 같은 상황에 이른 근본 원인은 성장 동력의 상실이다. 경제가 성장 동력을 잃으면 기업투자가 어려워 고용이 감소하고 고용이 감소하면 빈곤상태에 빠지며 부채가 증가한다. 이 과정에서 경기활성화를 위해 풀린 자금은 부동산이나 증권시장으로 흘러 투기를 유발하고 빈부격차를 확대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우리경제가 저성장 기조의 고착화로 인해 성장이 멈출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잠재성장률이 외환위기,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며 과거 8.3%에서 최근 2.2% 수준까지 하락했으며 향후 신 성장 동력 발굴과 기업의 과감한 투자를 끌어내지 못하면 잠재성장률이 10년 내에 0%에 진입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 경제상황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크다. 성장 동력과 고용을 창출하는 산업발전과 혁신성장은 뒤로하고 정부가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린다는 소득주도성장에 집중해 경제가 성장기능을 잃고 일자리는 줄었다. 더군다나 경제의 수용기능을 무시하고 과도하게 최저임금을 올리고 근로시간을 단축해 자영업과 중소기업이 집중 타격을 받았다. 이에 따라 폐업이 대량으로 발생하고 실업자가 급격하게 늘었다. 무엇보다 시장기능을 무시하고 규제와 세금으로 부동산 시장을 묶어 사상 최악의 가격폭등을 불러왔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계·기업 모두가 빚더미 위에 올라 총 5000조원 규모의 부채국가가 되었다. 남은 희망은 차기 정부다. 이제 여야 최종후보가 결정돼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 들어섰다. 각 후보들이 갖가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며 상대방을 비방하는 구태를 벗고 당당하게 정책경쟁을 벌여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고 경제가 다시 뛰게 만드는 새 정부가 태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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