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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아

플레이DB 기자I 2015.05.30 07:57:12
 

뭔가를 보고 음악을 이끌어내는 사람이겠지요. 개인적으로 시놉시스를 싫어합니다. (웃음) 시놉시스는 어떤 이야기를 하겠다고 간단하게 적어놓은 건데, 그걸 바탕으로 엄청난 분량의 작품으로 만들어지면서 많은 부분들이 변하거든요. 완고를 봐야 그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가 굉장히 쫄깃하게 다가와요. 완고를 받은 이후부터 음악적으로 어떻게 가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면서 계속 방향을 잡아 갑니다. 작가가 풀어내는 언어의 속도, 느낌에 따라 음악이 달라지지요.

 

어릴 때 피아노를 5, 6년 정도, 바이올린을 3년 정도 배웠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음악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제가 나고 자란 부산은 당시 예고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고 바이올린으로 예고에 들어갈 실력도 안 되었어요. 또 부모님이나 할아버지까지 교육자시라 집안 풍경은 언제나 조용히 공부하고 책을 보는 분위기였지 음악과는 별개였어요. 그렇게 평범하게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3수 끝에 대학 독어독문학과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생 때는 피디가 되고 싶어서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오래 했었는데 음악적인 감각이 있으니까 관련 일도 시키더라고요. 그러면서 방송, 드라마 음악이 하고 싶어졌지만 전공자가 아니면 못한다는 방송국 관계자분의 말씀을 듣고 음악을 전공해야겠다고 굉장히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웃음)

돌이켜보면 고등학생 때 방송부원이었는데 점심시간, 청소시간 등에 항상 음악을 틀어야 했고 그러면서 계속 음악을 들었던 게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 피아노를 칠 때도 남들보다 습득 능력이 빠르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그래서 다시 들어간 곳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작곡과였습니다. 학교를 정말 열심히 다녔고 그때까지 뮤지컬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3학년 무렵에 관심이 커졌어요. 그러면서 관련 수업을 듣기 시작한 거죠.

국악작업이나 애니매이션 작업 등을 했고 결혼 후 아기를 낳으면서 몇 년 간 활동을 못했는데 한예종에서 수업을 하셨던 이희준 선생님이 연락을 하셨기에 뭐라도 시켜달라고 했지요. (웃음) <사춘기> 대본을 주신 게 둘째 태어난 후 2개월 됐을 때였고, 그렇게 뮤지컬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뮤지컬 <마마돈크라이>



대본을 집안 곳곳에 둬요. 최대한 아이들을 제 손으로 키우고 싶어서 육아를 하면서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바로 대본 보고 틈틈이 써야 하기 때문이죠. 정말 전투적으로 써요. 대학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정말 많은 곡을 썼어요. 자리에 앉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고 오로지 곡만 쓰거든요. 그렇게 대부분의 곡 스케치를 해 두고, 아이들 재워놓고 새벽에 책상 앞에 앉아 정리를 시작하는 거죠. 대부분의 곡을 그렇게 썼습니다.

 

지방에서 자고 나라서 공연이라는 걸 크면서 한 번도 못 봤습니다. 중고등학생 때 가수를 좋아해서 콘서트를 쫓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오직 음악 듣는 것만 좋아했어요. 음악만 들으면 뭐든지 다 해소가 됐으니까요. 대학 진학 후에도 공연을 안 봤고요.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겨우 뮤지컬만 보는 상황입니다. 공연을 보지 않았는데 공연을 하고 있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죠. (웃음) 그렇지만 뮤지컬은 아니지만 방송국에서나, 또 희한한 아르바이트를 굉장히 많이 했었거든요. 뮤지컬이 너무나 많은 장르를 요하는 작업이다 보니 그런 경험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성인이 된 후에 작품을 접하다 보니 작품 자체보단, 어떤 부분에서 어떤 것들이 활용되고 표현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렇다 보니 제 생애를 뒤흔들 만큼 감흥이 컸던 작품은 꼽기가 어렵네요. <씨왓아이워너씨>의 작곡가 라키우사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 공연도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1. 데이브 그루신(Daive Grusina) - 보사 바로크(Bossa Baroque)
한번 들었을 때 기억에 남는 음악을 좋아하는데, 처음 들었을 때 깔끔하고 명료한 사운드, 멜로디에 매료되었습니다. 래리 칼튼(Larry Carlton), 리 릿나워(Lee Ritenour) 등의 기타 연주를 정말 좋아해서 GRP레이블의 음악가들과 앨범을 모조리 다 들었습니다.

2.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 어나더 브릭 인 더 월(Another Brick in the wall)
전위적이고 대서사시가 느껴지는,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느껴지는 음악입니다. 헤비메탈이나 록보다 음악적으로 뭔가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고 강렬해서 무척 좋아했던 것 같아요. 듣고 있으면 많은 생각과 감정이 분출합니다.

3. 팻 매스니(Pat Matheny) - 아 유 고잉 위드 미?(Are you going with me?)
팻 매스니 음악은 몽환적이고 사운드가 정말 독특합니다. 다른 시공간에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음악에 빨려 들어갈 것 같죠. 이 노래를 듣고 난 다음에 오레(Au Lait)를 들으면 '이런 음악에 도취되어 뭔가의 절정을 맛보기 위해 자살을 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만큼 중독성 강한 음악들이 팻 매스니의 음악인 것 같습니다.

뮤지컬 <사춘기>

 

대본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 음악이 한 가지 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여러 결이 있는 걸 굉장히 좋아합니다. 작가들이 써 주신 가사를 잘 살리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래야 조금 더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어요. 실용음악하시는 분들이 제 음악 코드나 진행을 봤을 때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뮤지컬을 하면서 생긴 습관인데 한 장면에 '도미솔'을 넣어서 딱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장면과 제가 느낀 것들을 잘 표현하려면 어떤 소리들, 어떤 리듬이 있어야 할까 무척 고민합니다. 좀 더 그런 관점에서 출발하다 보니 음악에 여러가지 결이 생기고 약간 독특한 사운드나 진행이 생기는 것 같아요.

 

뮤지컬 첫 작업이 <사춘기>였는데 당시 저만 30대였고 나머지 스탭분들은 다 40대셨어요. 그 나이대가 되면 사회적으로 굉장히 큰 책임감도 생기고 작업도 많이 하셨을 거잖아요. 그때 김운기 연출님이 어떤 상황이 되어도 최선을 다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주는 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는데, 30대임에도 불구하고 저와 작업을 하는 건 애가 둘이라 도망을 안 갈 것 같아서라고요.(웃음) 책임감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첫 작업부터 좋은 것을 배우며 출발한 거죠. <사춘기> 할 때는 정말 초짜였는데 겁 없이 했구나, 싶고, 저 뿐 아니라 모든 배우들까지 정말 극장에 살다시피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서로가 처음이니 시간도 굉장히 많이 걸렸지만 그러면서 같이 '서로가 정말 최선을 다하는구나'하는 걸 느꼈습니다.

 

늦은 나이까지, 기업체 정년을 넘어서 60세까지는 곡을 쓰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또 외국에서는 관객들이 작곡가 이름을 보고 볼 작품을 정하잖아요. 제 이름을 보고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이 있는, 배우들도 '저 사람의 노래를 불러보고 싶어'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작곡가가 되고 싶습니다.

 

지난해 제가 작곡한 작품이 다섯 편 공연했는데 그걸 보고 누군가는 제가 큰 부자가 되었어야 한다고 했지만 전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 (웃음) 특정 제작사의 문제라기 보다, 창작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공연계 전반이 개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에는 뮤지컬 콘서트들도 많이 생겨서 배우들이 뮤지컬 넘버를 자주 부르는데, 저작권 정리가 안 되어서 콘서트 수익이 생긴다 해도 창작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습니다. 그런 부분들 역시 정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음악을 진지하게 배우는 기간은 분명히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뮤지컬은 너무나 많은 음악 장르를 요구합니다. 또 자신이 만든 곡의 느낌을 충분히 살리고 싶다면 작곡가도 어느 정도 편곡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편곡을 할 수 있는 분이 많지 않은 것 같고, 단순한 편곡과 뮤지컬 편곡은 많이 다른 것 같거든요. 극의 특성을 알아야 하니까요. 작곡을 해서 편곡자를 거쳐 음악감독이나 제3자에게 곡이 넘어가게 되고 그러면서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 과정을 공유할 수 없거나 좀 더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하고 세밀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편곡을 아는 게 도움이 됩니다.

또 뮤지컬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는 일이다 보니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합니다. 본인만 열심히 음악 만든다고 다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런 준비 과정을 거쳐서, 또는 그런 준비가 되었을 때 뮤지컬을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합니다.

정리: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사진: 플레이디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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