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말기 권력형 게이트로 불거진 사건. 그 한가운데에 있었던 최규선씨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분식남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가 회장으로 있던 회사 유아이에너지는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분식회계에 대한 제재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분식회계의 고의성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근거로 한 한국거래소의 상장폐지 결정도 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이야기도 한번 들어볼까요?
먼저 쟁점이 된 사건부터 간략히 짚어보겠습니다. 유아이에너지의 모회사 유아이이엔씨는 2006년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와 병원(도훅병원) 건설 관련 계약을 맺습니다. 그 이듬해 공사계약자는 다시 유아이이엔씨에서 자회사 유아이에너지로 바뀝니다.
쿠르드 정부는 공사 계약금 269억원을 최초 계약자인 유아이이엔씨로 송금합니다만, 유아이이엔씨는 이 돈을 공사계약자가 유아이에너지로 바뀐 뒤에도 자회사에 송금하진 않았습니다. 최씨는 당시 유아이에너지가 공사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계약금을 넘겨주면 불필요한 데 써버릴 수 있다고 봤습니다. 마치 아버지가 따낸 공사 계약을 아들에게 넘겨줬지만, 부실한 아들이 못 미더워 계약금까진 넘겨주지 않았던 셈입니다.
유아이에너지 입장에선 공사계약자로서 마땅히 들어와야 할 계약금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으니 이는 손실 처리할 수밖에 없겠지요. 금융당국은 유아이이엔씨가 계약금을 유아이에너지에 넘겨주지 않은 것은 최씨가 횡령할 목적이 있다고 봤고 유아이에너지에는 손실을 끼쳤으니 배임이라고 봤습니다. 또 들어와야 할 계약금이 회계장부엔 없었으니 분식회계 혐의도 물었습니다. 한국거래소는 유아이에너지가 손실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자본금이 바닥났다고 판단(완전자본잠식), 주식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이른바, 상장폐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최씨는 그때 받은 계약금 269억원은 여전히 유아이이엔씨가 갖고 있기 때문에 횡령한 적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거래소가 자본금이 바닥났다고 판단한 근거가 됐던 유아이에너지의 감사보고서도 잘못됐다고 주장합니다. 상폐 근거가 된 건 삼일회계법인이 2012년 9월13일에 공시한 재감사보고서인데요.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걸까요?
최씨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유아이에너지의 도훅병원 관련 공사 계약은 상폐 직전인 2012년 8월6일 공사계약이 해지됩니다. 자금을 제대로 조달하지 못해 공사를 시작도 못한 탓입니다. 어쨌든 공사 계약은 해지됐고 앞서 쿠르드 정부가 유아이이엔씨에 송금한 269억원의 계약금은 또 다른 공사 계약(술래마니아 병원 건설 계약)의 계약금을 준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유아이에너지가 유아이이엔씨로부터 받지 못해 손실처리해 왔던 골칫거리 ‘도훅병원 계약금’이 이젠 사라진 겁니다. 삼일회계법인은 이런 사실을 인정해 그 동안 손실로 처리해 왔던 도훅병원 계약금을 ‘채무면제이익’으로 회계장부에 반영합니다. 일반적으로 계약금은 계약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다시 돌려줘야 하는 돈, 즉 일종의 ‘빚’이 되지만, 더 이상 이런 채무가 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269억원 규모의 손실이 사라졌다는 게 회계장부에 반영되면 유아이에너지는 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거래소가 상장폐지했던 근거가 사라지는 겁니다.
문제는 손실이 사라지는 시점입니다. 삼일회계법인은 공사 계약이 해지된 시점이 2012년 8월6일이기 때문에 2012 회계연도의 회계장부에 반영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렇게 되면 거래소의 상장폐지 결정은 정당합니다. 회계결산을 하게 되는 2012년 말이 돼야 손실이 사라지게 되는데 이때는 이미 상폐를 결정한 다음이기 때문입니다.
최씨는 2011 회계연도의 재무제표에 손실이 사라진 것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거래소가 상폐를 결정하기 전 다시 감사하라고 한 재무제표는 2011 회계연도의 재무제표였기 때문에 공사 계약이 해지됐다는 사실을 회계법인이 알았다면, 그 사실을 해당 재무제표에 반영했어야 했다는 겁니다.
최씨는 이런 논리로 거래소를 상대로 상장폐지 무효확인 소송을 진행했고 1심에선 승소를 했습니다. 거래소는 이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습니다. 항소심에서의 재판관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손실과 이익을 언제 인식해야 하는 게 옳으냐를 판단하는 데 따라 기업의 운명이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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