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와 하이힐 부대는 집회장 주변을 차지했다. 무대를 중심으로 자리를 채운 10대, 20대를 둘러싸며, 촛불들의 물결을 호위했다. 4일 저녁 7시30분, 28번째 미국 쇠고기 반대 촛불 문화제는 이렇게 시작했다.
집회 참여자 수는 예상보다 적었다. 주최 측 예상보다 적은 8000명(경찰추정 3500명)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넥타이, 하이힐 부대가 집회의 무게감을 살렸다.
◇10대가 넥타이를 깨웠다.."가서 보고 판단하자"
한 제조업체 관리직이라는 김모(50)씨는 “자식같은 아이들이 집회에 나와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을 보고 아찔했다”며 “누구나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쇠고기 협상에 아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동참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라고 말했다.
직장생활 2년차라는 김모(25)씨는 “고등학생들을 시위로 내모는 현실과, 그 현실을 만든 어른들이 문제”라며 비판했다. 집회를 세번 참석했다는 그는 “인터넷에서 댓글을 달며 비판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행동하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며 “집회를 직접 체험한 뒤, 필요성을 판단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을 지켜주기 위해 나왔다는 이들도 있었다. 실제로 촛불집회에서 넥타이부대의 모습이 늘어난 것은 경찰의 폭력 진압이 시작됐던 지난달 31일 이후였다고 한다.
이번 주 들어 비가 계속 내렸지만, 집회 참석 인원은 연일 1만명을 넘나들었다. 이중 상당수가 정장에 우의를 겹쳐입은 넥타이 부대였다는 게 집회 참석자들의 설명이다.
◇국정 난맥에 실망하고, 폭력 대응에 분노하고
박모(33, 서비스업 종사)씨는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든 것도 아닌데 경찰이 곤봉과 방패로 시위대를 내리치는 것에 화가 났다”며 “평화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시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정부를 가만히 둘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린 학생들에게 군홧발을 날리는 공권력에게 분노를 느꼈다는 것. 과거 독재정권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는 말도 들렸다.
김재윤 통합민주당 의원은 “지금 시대에 시민들이 물대포와 군홧발에 쓰러지고 밟힌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한 뒤, “국회의원들이 물대포 앞에 서서 국민들을 보호해야 된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아빠가 출근할 때 기름 값. 엄마가 시장가면 미친 소. 우리가 학교가면 0교시. 우리들의 수면시간 4시간”으로 시작되는 집회가요는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한 50대 회사원은 “쇠고기 졸속 협상은 미국 방문을 위한 선물에 불과했고, 강부자 내각이나 대운하 강행 등은 국민을 무시한 처사”라며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이 거리에 나오게 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모(37)씨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추진력에 상당수의 3,40대가 이명박 대통령의 도덕적 하자를 눈감아줬는데, 이 추진력이 알고 보니 `독단`인 것으로 확인됐다”며 “안하무인격으로 국민을 무시하니 마음이 돌아설 수 밖 에 없다”고 했다.
◇87년과는 다르지만.."내 뜻대로 하면 되고"
넥타이와 하이힐 부대의 표정은 착찹했고, 말은 비장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발랄 유쾌한 분위기를 즐겼다.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87년 6월 항쟁을 이끌던 넥타이 부대와는 또 다른 차이였다.
연인들이 손을 잡고 촛불을 들고 있었고, 직장동료들끼리 모여 집회를 주시하기도 했다. 트레이닝 복장 차림의 부부가 마치 산보를 하듯 가두시위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각기 다른 코스닥 상장사의 IR담당자인 장모씨와 김모씨는 “평소 비슷한 업무를 하는 관계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집회에 참석하곤 했었다”라며 “오늘은 원래 있던 약속이 깨져서 집회에나 와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 시티즌 밴드 카페 회원인 김모(34)씨는 “경찰의 폭력 진압이 본격화된 31일부터, 공연을 위해 모이게 된 사람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며, “음악을 통해 경찰과의 대치를 통한 두려움을 덜어냈으면 하는 차원에서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87년 6월 항쟁을 승리로 이끈 동력중 하나가 넥타이 부대의 가세였다. 2002년 미선 효순이 투쟁과,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에서도 넥타이들의 판단이 정국을 주도했다. 넥타이 부대의 정서가 국민 평균적인 눈높이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태평로를 출발해 종로 1,2가와 명동을 거쳐 시청앞 광장으로 돌아오는 거리 행진이 이뤄지는 동안, 넥타이들의 수는 더 불어났다. 퇴근하다, 또는 식사를 마치고 거리에 나왔다 대열로 들어온 것이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거리로 나온 넥타이들, 정부가 어떤 수습책으로 이들의 마음을 돌려 놓을지가 계속 의문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