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코스피 3000 시대는 한국 증시에 더 특별하다. 1000·2000·3000, 코스피 지수가 주요 마디대를 넘겼을 때 한국 증시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다르고 또 똑같을까. 증시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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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22선서 출범한 코스피 지수는 저금리·저유가·저달러의 ‘3저 호황’을 업고 1989년 처음 1000포인트 고지를 넘어선다. 당시 증권사 객장은 미아 찾기 안내방송이 흘러나올 정도로 투자자들로 북적였다. 노태우 정부는 1987년 대선 승리 직후 중산층 이하 국민을 위한 ‘국민주 개발·보급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외국인 투자자는 1992년부터 들어왔으니 순전히 개인의 힘으로 증시가 오른 것이다.
그러나 6년 만에 달성한 1000포인트는 단 5일 만에 무너졌다. 미국이 ‘블랙 먼데이’를 맞았고 원화 평가절상 압박수위가 높아지는 등 악재가 이어져서다. 깡통계좌를 찬 사람들이 이재민과 비슷하다 하여 ‘주재민(株災民)’이란 단어도 생겼다. 이후 코스피 지수는 닷컴버블을 기점으로 1000포인트를 되찾지만, 문제는 새천년을 기대하며 부풀었던 닷컴버블이 막상 새천년이 오면서 볼품없이 꺼졌단 점이다. 2000년 1000포인트에서 시작한 코스피 지수는 그해 말 500포인트까지 반토막났다.
코스피 2000 시대는 중국경제의 급성장과 적립식 펀드 열풍에 힘입어 2007년 열린다. 그해 중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무려 14.2%를 기록하며 피크를 찍었는데, 이에 한국 수출 경제가 수혜를 입으며 코스피도 올랐다. 뿐만 아니라 적립식 펀드 투자 열풍도 가세했다. 미래에셋의 ‘인사이트 펀드’는 2.5%에 달하는 수수료에도 불구하고 보름 만에 3조원을 블랙홀처럼 끌어모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며 코스피 지수는 2008년 10월 892포인트까지 폭락하며 투자자들의 가슴을 멍들게 한다.
오랜 기간 박스권에 갇혔던 코스피 지수가 추세를 돌파하고 3000선에 다달은 건 2021년이 돼서다. 코로나19 이후 1439선까지 폭락했지만,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를 위시한 각국 중앙은행들이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며 증시는 오뚝이처럼 다시 선다. 특히 한국의 경우 개인투자자들이 외국인과 기관이 내던진 매물을 모두 받아들며 시장을 굳건히 받친다. 이를 두고 ‘동학개미운동’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 과거와 같은 듯 다른 3000 시대…의의는?
‘이번 만은 다르다(This time It’s different)‘. 코스피 3000선을 두고 다들 입을 모은다. 이렇게나 초저금리인 것도, 이렇게 단기간에 개인투자자가 대규모로 개인투자자가 증시에 유입된 것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일정 부분에선 동의한다. 2000년대 초 34세 나이로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했던 이남우 연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는 “80년대는 개인의 힘으로 주식시장이 올랐다는 점에서 지금과 비슷하지만 외국인이 한국 주식시장에 참여하지도 못했고, 기업성장률과 금리가 모두 높았을 때라 비교하기가 어렵다. 닷컴 버블 때도 금리가 높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과거와 비슷하다는 의견도 많다. 이종우 이코노미스트는 “코스피가 1000, 2000, 그리고 오늘 3000을 기록하는 등 마디지수를 돌파했을 때를 보면 유동성에 의해 버블을 만들었던 시기”라며 “당시에도 주가 상승에 여러 이유를 붙였지만 머지 않아 떨어지고 수 년 후에야 다시 마디지수를 회복하곤 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코스피 3000이 갖는 의의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가 이참에 ‘천수답 증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김학균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한국증시는 외국인이 사면 오르고 팔면 내리는 ‘천수답증시’라는 오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개인투자자의 유입속도와 규모가 과거와 비교가 안 된다”며 “한국가계 금융자산이 4000조원인 걸 감안하면 아직 주식에 들어올 수 있는 여력은 남아있고, 저금리라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 한 개인투자자의 증시 유입이 이어지며 천수답 증시에서 벗어나고 향후 변동성을 완화시켜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