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인 작년 11월19일에는 대성호 화재 사고로 선원 12명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갑판 아래 선원실에서 취침을 하던 이들은 배 위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 따르면 지난해 어선 사고는 2134건, 인명 피해(실종·사망·부상)는 450명으로 역대 최다 규모다.
◇영화 ‘기생충’ 지하실 같은 어선 구조 바뀐다
이렇게 어선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자 해수부와 콤사는 팔을 걷어붙였다. ‘안전복지를 강화한 표준어선형에 관한 기준(표준어선형 고시)’을 제정하기로 한 것이다. 해수부와 콤사는 지난 5~6일 경남 사천 삼천포수협, 지난 11~12일 목포에서 조선소, 조선설계 사무소, 어업인 단체장을 대상으로 첫 설명회도 진행했다.
이는 안전을 강화하는 쪽으로 선박을 개조하는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이다. 사고를 어민들 개개인의 운항 부주의, 안전 불감증 탓으로 돌리던 관행에서 벗어난 첫 시도다.
현재는 어선별 허가톤수 규제에 따라 어선 길이·공간을 제한하고 있다. 어민들은 한정된 공간에서 어획 보관 공간을 늘리기 위해 화장실 등 나머지 공간을 없앴다. 연안의 어족 자원이 줄어들자 불법 증·개축으로 어선 길이를 늘리고 먼 바다로 나가 조업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이 과정에서 화장실조차 없는 어선이 출현했다. 영화 ‘기생충’의 지하실처럼 주거공간인 선원실이 갑판 아래로 밀려났다. 이같은 기형적인 불법 구조 때문에 선박 안전은 더 취약해졌고. 조업 환경은 더 열악해졌다.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는 조업환경에서 운항 부주의 등 사고가 잇따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
|
문상원 해수부 어선안전정책과 주무관은 “배가 좀 더 커지고 복지공간 증설도 가능해지면서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조업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표준어선형 범위 내에서 다양한 어선 건조가 가능해 조선산업을 육성·지원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6만5835척(작년 기준) 어선을 현대화하는 첫 발을 뗀 셈이다.
설명회에 참석한 조선업계 관계자들도 조선업을 살리고 안전을 강화하는 효과가 클 것으로 봤다. 전기철 칸조선 대표이사는 “어선이 어업인의 생활 터전인데도 그동안 화장실도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며 “어선을 일하고 싶은 공간으로 만드는 표준어선형 정책은 명분 있고 현장에서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원민 대해선박설계 대표이사는 “불법 증·개축이 만연해질수록 설계가 복잡해지고 번거로운 작업이 많다”며 “이번 제도 개선으로 새로운 조선설계 시장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선 뉴딜은 미래 어선 프로젝트…어민 의견수렴 중요
|
한 어민은 설명회에서 “어민들은 연안에서 고기가 안 잡히다 보니 불법으로 어선을 증설해 먼 바다까지 나가는 실정”이라며 “복지공간 넓혀주는 게 좋은 방향이지만 지금은 어선 크기부터 더 크게 해 어획량을 보장해야 한다. 지역마다 해양 상황이 다른데 일률적으로 표준어선형을 도입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주들이 ‘조업하기 좋게 배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에서 복지공간을 늘리기는 힘들다”고 토로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어민 등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단계적으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선박을 크게 할수록 어획량이 늘어 어민들 소득이 단기적으론 보장되겠지만 어족자원 고갈로 지속가능한 어업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형어선 제도를 개편한 뒤 다른 중대형 어선과의 형평성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표준어선형 도입을 시작으로 어선 안전, 어민 소득, 지역경제를 조화롭게 살리는 중장기 수산정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용석 해수부 어업자원정책관은 “이번 제도개선이 끝이 아니다”며 “표준어선형 도입이 불법 증·개축의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고 잘 정착되는 게 미래 어선 정책의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