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살해, 짜릿해"…청소년 동물학대, 방관해야 하나요

김보겸 기자I 2019.12.08 10:27:43

동물자유연대, 청소년 동물학대 사례 고발
만 14세 청소년은 형사처벌 대상 아냐
학폭법서도 ''사람''향한 폭력만 규제해
"학교 내 생명 존중 교육 의무화해야"

지난 7월 개인 방송에서 반려견을 학대한 혐의를 받는 유튜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사진=동물자유연대)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고양이 살해 4마리째…정말 짜릿했다”

지난 4일, 한 인터넷 게시판에 중학생으로 추정되는 이가 고양이를 학대하고 살해했다며 끔찍한 사진을 올렸다. 고양이 배가 갈라져 창자가 튀어나와 있고 목과 꼬리가 잘려 있었다. ‘인증샷’도 올라왔다. 누군가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 아니냐’고 묻자,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칼을 촬영해 올린 것이다. 칼에는 고양이의 털과 혈흔이 묻어 있었다.

이 게시자는 범행 이전에도 수차례 동물학대를 목적으로 한 글을 올렸다. ‘길고양이를 잡는 법’, ‘망치 구입처’를 묻거나 새끼고양이를 학대하고 부모에게 자랑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사건을 제보받은 동물단체는 게시자를 경찰에 고발했다.

◇“동물 향한 폭력성, 인간 향할 가능성 높아”

청소년의 도를 넘은 동물학대가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지난 6월 한 초등학생이 고양이 사체와 함께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피 묻은 돌을 촬영해 개인방송 채널에 올리기도 했다.

지난 6일 동물자유연대는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두 달간 제보받은 잔혹한 청소년 동물학대 사건을 공개했다. 연대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중화가 잔혹한 동물학대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김민경 활동가는 “과거에도 단순히 재미를 위해 냉장고에 강아지를 넣거나, 살아있는 햄스터를 해부한 사진을 개인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는 사례가 있었다”면서 “다만 최근에는 SNS나 유튜브에서 호응을 받기 위해 더 잔인한 방식을 동원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6일 동물자유연대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동·청소년의 동물학대범죄 예방대책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사진=동물자유연대)


동물자유연대는 동물을 학대하는 폭력성이 결국 인간을 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퇴사한 직원과 자신의 아내, 그리고 아내와 불륜 사이로 의심했던 대학 교수를 무차별 폭행한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도 동물학대 전력이 있다. 양씨는 직원들에게 일본도로 살아있는 닭을 내리치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본인이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역시 어릴 적 쥐나 강아지 등을 자주 학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2015년부터 동물학대가 폭력 범죄를 예측하게 하는 조기 지표로 보고 동물학대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 강화와 함께 범죄 기록을 수집·관리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동물학대를 중범죄로 취급하고 최대 7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물학대 범죄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다. 지난달 법원은 ‘연트럴파크’ 고양이 살해범 30대 정모씨에게 징역 6월을 선고했다. 최근 3년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 512건 중 실형이 선고된 건 4건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박선화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청소년 동물학대는 성장 과정에서 그 수위가 더 잔혹해지고 어른이 된 후 폭력성향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적극적인 예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청소년이라서’ 처벌 어려워…담당 기구도 없어

하지만 청소년 동물학대가 법적, 교육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은 만 14세 미만의 청소년을 ‘촉법소년’으로 규정한다. 청소년은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 처벌하지 않는 것이다. 학교의 조치도 불가능하다. 학교에서 벌어진 폭력행위를 규율할 수 있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사람에 대한 폭력만을 규제한다. 동물학대는 처벌할 수 없다. 관련 범죄를 담당할 기구도 없다.

실제로 지난달에는 한 초등학생이 어미 고양이 옆에 있는 새끼 고양이를 학대해 학교 측이 해당 초등학생을 경찰에 인계했다. 하지만 학교와 부모가 학생을 ‘훈계’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결국 인간 안전 위한 일”…생명존중 교육 실시해야

동물자유연대는 동물을 보호하는 것이 곧 인간 사회의 안전과 직결된다고 주장했다. 한혁 동물자유연대 국장은 “동물학대범죄는 인간의 심성을 파괴하는 반사회적 범죄로 단호히 처벌해야 한다”며 “청소년이라도 예외여선 안 된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청소년 동물학대에 대한 처리 기준이 없는 만큼, 정부가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국장은 또 “학교에서 제대로 된 생명존중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청소년의 잔혹한 동물학대 범죄가 날로 늘어난다”면서 “동물친화적인 학교 공간을 만들고 생명 존중 교육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8년 발표된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는 동물권 조항이 신설됐다. 국가가 동물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과거 개헌안에 수용된 적이 없던 조항이 포함되자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길가의 동물들은 학대 위협에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다. 한 국장은 “동물학대를 저지른 청소년을 탓하기에 앞서 산 생명을 물건처럼 취급해 온 사회 전체가 반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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