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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기소로 사법농단 수사가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자 검찰이 주요 대기업 수사에 적극 나설 채비를 하는 모습이다.
21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정치인들에게 이른바 쪼개기 후원금을 제공한 혐의(정치자금법 등 위반)를 받는 황창규 KT 회장을 조만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앞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4년부터 4년간 19·20대 국회의원 99명에게 총 4억379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황 회장 등 7명과 KT 법인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지난달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조사 결과 KT는 1인당 국회의원 후원 한도인 500만원을 피하기 위해 회사 임직원과 가족·지인 등 37명의 개인 명의를 이용하는 쪼개기 후원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경찰이 수사한 이 사건을 점검한 뒤 기소가능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 “황 회장에 대한 피의자 조사가 필요하다”며 소환방침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4월 경찰에 피의자로 출석한 황 회장은 금명간 검찰 청사에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가습기살균제 재수사도 경영진 조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권순정)는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와 애경산업 등의 실무진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시민단체인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는 지난해 11월 업무상 과실·중과실치사상 혐의로 최창원·김철 SK디스커버리 대표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1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SK케미칼은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을 원료로 가습기살균제인 ‘가습기메이트’를 생산했다. 애경산업은 시중에 이를 판매했다.
검찰은 특히 최근 SK케미칼의 하청업체로서 원청이 공급한 원료로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애경산업에 납품한 필러물산 전 대표 김모씨를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법조계에선 김씨 구속과 기소는 법원이 혐의를 어느 정도 인정한 것으로 이 사건 핵심 쟁점인 공소시효 문제도 해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의 칼날은 결국 이들 기업의 전ㆍ현직 대표 등 윗선 조사로 향할 전망이다.
사법농단 사건 이후 대형 사건으로 꼽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분식 의혹 수사는 3월부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송경호)의 인력은 기존 12명에서 최근 정기 인사를 통해 18명으로 늘어났다. 삼바 사건에 본격 대응하기 위해 인력을 늘린 것이란 해석이 많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삼성바이오 본사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물산, 삼정·안진·삼일·한영 등 4대 회계법인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해 기초적인 자료를 확보했다. 또 회사 관계자들을 상대로 비공개 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검찰은 다만 특수부 인력의 상당수가 여전히 사법농단 사건 보강수사와 기소 준비 등에 투입돼 있어 3월 이전에는 삼성바이오 사건에 대한 집중 수사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 밖에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부장 최호영)는 게임업체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대표의 1조 5000억원대 조세탈루 의혹 사건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자택 보수공사 관련 배임 의혹 사건 등을 맡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 형진휘)의 경우 이날 현대·기아차가 세타 2엔진과 조수석 에어백 등 차량 부품 결함을 고의로 은폐했다는 의혹에 대해 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지난 2016~2017년 국토교통부와 시민단체 YMCA가 각각 고발한 건이다.
검찰 내부에선 사법농단 수사 때문에 지연된 사건을 이제는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전날 대검청사에서 열린 월례간부회의에서 “그간 불가피하게 지연됐던 서민생활 침해 범죄에 대한 수사 등 본연의 업무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