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만난 보육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 지어진 시설이 오히려 최근 지어진 시설보다 좋다는 것이다. 일본의 보육소는 왜 퇴행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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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타마현 와카바역에서 5분정도 걸으면 주택가 사이로 2층짜리 ‘하치노스 보육원’ 건물이 보인다. 사회복지법인이 세우고 지방자치단체의 인가를 받은 인가보육소다. 0세부터 5세까지 총 72명의 아동을 15명의 보육교사가 돌보고 있다. 이곳은 보육교사 한명이 돌보는 아동수가 나라가 정해놓은 교사당 아동수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보육교사 1명이 30명까지 맡을 수 있는데도 10명만 돌본다.
면적도 넓어 아이들은 건물 안에서 마음껏 줄넘기를 하고 지루하면 운동장에서 모래성을 쌓거나 운동장 뒤편 언덕에 심은 나무에서 과일을 따먹는다.
덕분에 이곳의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며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학무모들의 만족도 또한 높다.
오오타케 신이치 하치노스 보육원 원장은 “국가에서 정한 최저기준은 어디까지나 최저기준일 뿐”라며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고자 자체적으로 아동수 대비 면적과 교사수에 대해 더 높은 기준을 세워 보육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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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보육소가 모두 이곳 같다면 좋겠지만 일본 내 하치노스 보육원와 같은 곳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기아동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자 일본 정부가 보육소를 확충하는 대신 수용 아동 인원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한 탓이다.
후코인 아키 보육원을 생각하는 부모모임 대표는 “과거엔 하치노스 보육원이 일본의 평범한 보육소의 모습이었다”고 돌이켰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정부가 긴축재정을 실시하면서 보육소 확대에 제동을 걸었다.
맞벌이 부부 증가로 보육소 수요가 늘어나자 정부는 보육소 수용인원을 확대해 기존 보육소에 보다 많은 아이들을 받도록 했다. 급기야 후생노동청은 1998년에 ‘정원 탄력화’ 규정을 도입, 100명이 정원인 보육소에 125명까지 받아도 좋다고 허가했다.
후코인 대표는 “처음 규정이 만들어질 때는 ‘육아휴직을 쓴 부모가 당장 아이를 입소시켜야 할 때’ 등 정원 초과 조건이 까다로웠지만, 그마저도 2010년에 사라졌다”고 전했다.
운동장이 있는 보육소도 줄었다. 도쿄 분쿄구엔 운동장이 있는 보육소가 20% 불과하다. 이 또한 2001년 후생노동청이 지방자치단체에 ‘운동장을 만들 수 없으면 주변 공원으로 갈음해도 좋다’고 허가한 까닭이다. 결국 정부의 주먹구구식 편의주의 정책 탓에 하치노스 보육원과 같은 곳이 점점 사라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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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코인 대표는 “정부가 아이들에게 돈을 너무 아낀다”고 일갈했다. 그는 “임신 사실을 안 순간부터 보육소 입소 걱정을 하다 우울증을 앓는 엄마들이 있다면 믿겠냐”며 “국가 재정이 어려워도 아이들을 위해 예산을 더 투입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일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전체 재정에서 보육소과 유치원에 대한 재정 지출 비중이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아동 관련 지출이 1.3%로 OECD 국가 평균(2.1%)의 절반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별도 시설 없이 주택 등을 개조한 가정어린이집에서 보육하는 아동수가 32만명이나 된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고가 빈발하는 이유도 몇명 안되는 보육교사가 많은 아이들을 돌보면서 교사들의 업무부담과 스트레스가 과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 들어 5년 내 질 좋은 국공립 어린이집을 4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만큼 일본 보다는 희망적이다. 대기아동을 줄이기 위해 보육소를 늘리기보다 보육소의 질을 낮춰온 일본, 이웃나라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의 보육정책을 보다 촘촘히 다듬어 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