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후문승차·스마트폰'…버스기사 괴롭히는 '3중고'

전상희 기자I 2016.05.23 08:11:00

갖은 민원에 시달리고 욕설, 심지어 폭행까지..
감정노동 수위 항공승무원과 판매서비스직과 비슷
근무환경 개선해야 사고 위험 줄일 수 있어

버스운전기사들의 감정노동 실태가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난폭운전 양상으로 나타나고 결국 사고 발생 위험을 높게 만든다. 감정노동 실태 조사 등 이들의 근무 환경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전상희 기자
[이데일리 전상희 기자] 지난 4월 경북 김천시 한 시내버스 안에서 승객 이모(49)씨는 “왜 멈추지 않느냐”며 버스기사 A(56)씨를 무차별 폭행했다. 정류장을 지나칠 무렵 하차벨을 눌렀는데도 제때 세우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씨는 만취한 상태였다. 당시 차 안에는 승객 10여 명이 타고 있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서울 시내버스 운전기사 B씨는 최근 3개월간 잠잘 시간을 쪼개 구청을 오가느라 진이 빠졌다. B씨가 버스정류장을 무정차 통과 했다며 서울시 다산콜센터에 민원을 넣은 탓에 본인 책임이 아니란 사실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복구해 다행히 누명은 벗었지만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쳤다.

‘시민의 발’인 버스운전기사들이 승객 운송과정에서 위험수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중한 업무 부담에 각종 민원과 승객의 폭행 위협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결국 승객 안전을 위협하는 난폭운전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버스기사 스트레스 3명 중 1명 위험수위

사회건강연구소가 지난 2월 버스기사 10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버스기사들의 감정노동 수위는 항공승무원·판매서비스직 등 대표적인 감정노동 서비스직과 비슷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 명 중 한 명(31.8%)이 노동자의 실제 감정과 직장에서 요구하는 감정 표현 규범의 충돌로 발생하는 감정 부조화, 고객 응대 과정에서 입은 마음의 손상 정도를 측정한 ‘감정부조화 및 손상’ 항목에서 위험군에 속했다. 68.3%는 ‘조직의 지지 및 보호체계 부재’ 위험군으로 감정노동에 따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노동자를 지원하는 방안 등이 미흡해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애프터서비스(AS) 기사·간호사·소방공무원 등 대표적 서비스직 14개군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감정노동 위험군에 속한 버스기사들은 정상군에 비해 고혈압·이상지질혈증·소화기질환·수면장애·요통 등을 겪는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버스운전기사들은 대표적인 스트레스 요인으로 △취객의 폭행 및 폭언 △휴대전화 등을 보며 카드·요금 등을 미리 준비하지 않는 것 △후문 승차 뒤 무임승차 △승객 사정에 따른 무정차 신고 문제 △승객 부주의로 인한 안전사고 등을 꼽았다.

버스운전기사 C씨는 “운행 시간이나 도로 상황 등 운행 중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닌데 정류장이 아닌 곳에 막무가내로 내려달라고 하는 등 무리한 요구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운전기사 D씨는 “승객이 스마트폰을 보다 버스를 놓치거나 버스전용차로에 세워진 차들 탓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노선을 이용해도 책임은 무조건 운전기사에게 돌아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극심한 스트레스 난폭운전으로 이어져

버스운전기사들의 스트레스는 난폭운전으로 이어진다. 매일 버스를 이용해 수원에서 서울로 출근한다는 이모(30)씨는 “난폭운전으로 사고가 나지 않을까 출근길에 마음 졸인 게 여러 번”이라며 “교통카드를 조금만 늦게 갖다 대면 쌍욕을 내뱉는 기사도 있다”고 말했다.

난폭운전은 사고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4년 한 해동안 발생한 시내버스 교통사고율은 19.4%로 일반 승용차 교통사고율 4.6%에 비해 4배가 넘는다.

전문가들은 이를 근무실태나 감정노동과 연관지어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진주 사회건강연구소 소장은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하루 근무시간을 9시간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일부 지역의 경우 격일제로 하루 18시간을 운전하고 있다”며 “이는 마약 중독 상태에서 버스를 모는 것과 다름 없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감시나 단속이 아닌 직무 스트레스가 발생하지 않는 여건을 조성하는 게 우선”이라며 “시민들은 승하차 전 미리 카드를 준비하고 무리한 요구를 자제하는 등 기본적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