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기금, 대부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금감원 점검 착수

이준기 기자I 2013.03.21 08:20:00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지난달 13일 오후 3시 서울시내 모처의 한 대부중개업체. 낮은 신용등급으로 은행 대출을 거절당한 자영업자 김강두(56·가명)씨는 중개업체 사장 A씨와 대출 상담을 시작했다. A씨는 “1금융권보단 고금리 대출이지만 연체해도 ‘국민행복기금’에서 원금 일부를 감면받을 수 있고, 저금리 대출로 전환도 가능하다”며 2000만원을 빌려 가라고 종용했다. 김 씨 역시 평소 미디어 등을 통해 국민행복기금의 실체를 언뜻 들었던 데다, 당장 급전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A씨의 말만 믿고 돈을 빌렸다. 하지만, 첫 달 연체가 되자, 김 씨는 A씨의 불법 추심에 시달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공약으로 오는 28일 출범하는 국민행복기금이 불법 대부중개업체의 마케팅 대상으로 전락했다. 일부 대부업체가 국민행복기금이란 명칭을 내걸고 고금리 대출을 권유하고 있어 금융감독당국이 긴급 점검에 착수한다.

21일 금융당국 및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대부업체는 “곧 출범하는 국민행복기금을 믿고 대출을 받아라”는 식으로 고금리 대출 마케팅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빚을 갚지 못해도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이자 탕감은 물론 원금까지 감면해주니 고금리를 내서라도 돈을 빌려 가라는 것이다.

당장 급전이 필요한 서민 입장에선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다. 평소 TV와 신문, 인터넷을 통해 국민행복기금이란 ‘명칭’에 익숙해져 있고, 꼬박꼬박 대출금을 갚으면 대상에서 제외돼 ‘빚을 안 갚는 게 상책’이라는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 심리가 급속히 퍼진 것도 한몫했다.

이들 불법 대부중개업체는 이런 서민들의 모럴해저드 현상을 악용해 돈벌이에 급급했던 셈이다. 하지만 국민행복기금 수혜 대상은 지난 2월 말 기준 6개월 이상 연체된 빚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한정된다. 저금리 전환 대출 역시 6개월 이상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고금리 대출 이용자에 한해서만 가능한 만큼 이들 대부중개업체의 말은 모두 거짓이다.

금융감독원은 국민행복기금은 ‘상환 의지를 갖추고 신청하는 사람만 빚을 감면해 주는 것’이므로 이들 불법 대부중개업체의 꼼수에 넘어가지 말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피해자가 더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대부중개업체를 대상으로 점검에 착수하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서민들의 심리를 이용해 단물을 빼먹는 불법 대부중개 행위는 어떻게든 뿌리 뽑겠다는 게 감독 당국의 의지”라며 “필요할 경우 현장에 직접 검사반을 투입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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