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사이에서는 디지털 과의존을 우려하는 아이들에게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제품 디지털 교과서를 체험한 교사들 사이에서는 “무엇이 AI를 적용했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교육 업계에서도 볼멘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AI 디지털 교과서 1차 검정심사에서 초등수학 3~4학년 부문에서 탈락한 업체들이 일제히 이의신청을 접수했지만 최종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교과서 업체 뿐만 아니라 스마트러닝에 오랫동안 주력한 업체도 탈락하면서 검정 기준에 대한 의문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최종 검정에 합격한 업체들이 마냥 좋지만도 않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구독형’으로 도입한다. 교육부의 가격 가이드라인(과목당 약 3만 7500원)이 너무 낮아 실질적인 비용을 반영하지 못한다. 교육부는 최근 논란을 의식해 2026년 이후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대해서도 입장을 선회했다. 업체들이 정부를 믿고 막대한 자금을 들여 AI 디지털 교과서 개발에 나섰지만 검정기준도, 향후 정책 방향도 불투명해진 것이다. 디지털 교과서 개발에는 과목당 2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전해진다.
도대체 AI 디지털 교과서 개발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당장 내년 도입은 확정된 상황이라 공급해야 하지만 불과 1년 후에는 장담할 수가 없게 됐다. 정부의 이같은 태도 변화는 책임감도 일관성도 없어지다보니 당초 정책 취지조차 살리지 못하게 됐다. 일단 예정된 것은 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은 전형적인 공무원식 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2012년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만 5세 누리과정 도입 이후 교육 현장은 예상대로 혼란과 불만투성이였다. 촉박한 개발 일정으로 만 3·4세는 물론 초등교육과정과의 연계가 부족했다. 내용의 적절성도 충분히 검토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유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교사 주도적인 천편일률적인 교육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2020년이 되어서야 새로운 누리과정을 적용했다.
지금은 바야흐로 ‘AI 시대’다. AI에 익숙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 인재들을 위한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