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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석의 식사(食史)]한국인의 국민 채소, 단연 배추

강경록 기자I 2024.08.16 07:58:17
배추에 진심이라 노지배추가 나지않는 가을엔 아예 영업을 안하는 상주식당. 경상도식 추어탕이 시원하다.
배추에 진심이라 노지배추가 나지않는 가을엔 아예 영업을 안하는 상주식당. 경상도식 추어탕이 시원하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 소장] 무더위에 사람만 힘든 건 아니었다. 긴 장마와 폭우, 폭염 탓에 이달 하순 출하를 앞둔 고랭지 배추도 그만 물러 버렸다. ‘배추가 아니라 금추’란 말이 절로 나올 시점이다.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 가격 정보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특등급 배추(10㎏) 평균 도매가격은 2만5173원. 전주보다 21.3%, 지난해 같은 날에 비해 무려 57.7%가 높은 가격이다.

이 상황이라면 한국인은 무척 난감하다. 거의 모든 식생활에서 유난히 배추를 즐기는 까닭이다. 김치의 주재료이자 반찬, 국, 쌈 등 다양한 형태로 취식한다.

한국인 1인당 배추 연간 소비량은 47.5kg(농림축산 주요통계 2020년 기준)이다. 채소류 소비량의 3분의 1을 배추로만 채운다. ‘식탁 위 터줏대감’이란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원산지는 중국, 김치 유명세에 ‘한국 배추’ 인기

배추는 과거 민간에서 약초로 분류됐을 정도로 유용한 채소다. 비타민C와 비타민A, 칼슘, 칼륨, 식이섬유가 많아 건강에 좋다. 자상이나 화상을 입거나 독이 오를 때 데친 배추를 붙이면 좋다. 규합총서에도 ‘배추씨 기름을 머리에 바르면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아미노산(시스틴) 성분도 들어 맛을 내는데도 유용하다.

배추 이름은 ‘백채(白菜)’에서 왔다. 마찬가지로 생채(生菜), 고초(苦椒), 호초(胡椒) 역시 발음이 ‘추’로 변해 각각 상추, 고추, 후추라 부르고 있다. 원산지는 중국 북부, 현지의 절임 반찬 파오차이(泡菜) 역시 배추를 쓴다.

우리나라 김치가 세계적 유명세를 타면서, 원재료인 배추 역시 중국을 벗어나 ‘한국 배추’로서의 위상이 올라갔다. 2012년 제44차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국제식품 분류상 차이니즈 캐비지(Chinese Cabbage)에 속했던 한국 배추를 김치
깔끔하고 시원한 맛을 내는 솔푸드 배추전.
깔끔하고 시원한 맛을 내는 솔푸드 배추전.
캐비지(Kimchi Cabbage)로 분리 등재한 바 있다.

원산지와 무관하게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배추는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종자이기 때문이다. 토종 배추는 길쭉하고 배춧속이 반 정도만 뭉쳐지는 반결구 배추였다. 결구(結球) 배추란 잎사귀가 고갱이를 중심으로 공처럼 둥글게 뭉쳐지는 배추를 말한다. 결구배추는 잎이 단단하고 달아 김치를 담그기에 좋은 배추다.

이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해방 이후 1947년 설립한 ‘우장춘 박사 귀국추진위원회’는 당시 일본 종묘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던 세계적인 농학자 우장춘 박사를 맞이해 농산물 종자 개량과 보급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한 단체다. 정부는 1949년 한국농업과학연구소를 만들고 이듬해 귀국한 우장춘 박사를 모셨다. 그는 이곳에서 국민 식생활에 없어선 안 될 벼와 감자, 배추, 무 등의 품종을 연구했다.

1954년 우 박사는 기존 서울배추, 개성배추 등과 양배추 품종을 교배하고 이를 육성한 끝에 원예 1, 2호 등 새로운 결구배추 품종을 탄생시켰다.

지금 세계인이 김치로 접하고 있는 ‘한국 배추’의 탄생이다.

◇한국인의 식탁에 빼놓을 수 없는 배추

배추는 쌍떡잎식물 십자화목 십자화과의 두해살이풀이다. 서늘하고 강수량이 많은 곳에서 재배가 잘된다. 품종에 따라 50일에서 90일 정도 자라며 잎이 꽃처럼 뭉쳐지는 결구 현상을 보인다. 개량종은 단맛과 매운맛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재래종보다 통통하게 성장한다.

분류학상 ‘친척’으로는 순무와 청경채가 있다. 양배추와는 또 다르다. 배추 잎사귀를 꺾으면 달큼한 맛이 나는 뽀얀 즙이 나오는데 여기 포함된 비타민U 성분이 위장에 좋다. 국물에 넣으면 시원하고 구수한 맛을 내는 것도 이 성분이다.

배추는 주로 김치를 담지만, 다른 요리에도 은근히 많이 쓴다. 국이나 전골에 넣어 맛을 더하거나 메밀이나 밀가루로 풀을 쑤어 잎사귀로 배추전을 해 먹어도 시원한 맛이 좋다. 그대로 쌈을 싸먹는 경우도 많은데 특히 속대의 경우 과메기나 보쌈 등에 곁들여 아삭한 맛을 더한다.

직접 우거지를 말려서 짬뽕을 끓여내는 외남반점의 우거지짬뽕
직접 우거지를 말려서 짬뽕을 끓여내는 외남반점의 우거지짬뽕
일본에서도 국물 요리인 찬코나베, 요세나베와 샤부샤부에 많이 넣어 먹는다. 일본식 채소절임 쓰케모노에도 여러 채소 중 배추가 들어간다. 중국에서도 절여 파오차이를 만들거나 훠궈 같은 전골 요리에 넣는다.

배추의 겉잎 부분은 질기고 매운맛이 강해 떼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를 말린 것이 우거지다.

우거지는 특유의 식감과 구수한 맛이 좋고 영양가도 우수해 이를 활용한 음식이 많다. 씹는 맛이 탁월해 감자탕이나 조림 요리에 쓰면 생 배춧잎보다 낫다.

우거지는 배추뿐 아니라 푸성귀 종류의 겉 부분이나 윗부분을 의미한다. 어원도 ‘웃 걷이’에서 나왔다. 따라서 걷어낸 것을 재활용한다는 의미다. 저렴할 뿐 아니라 쓸모있는 자투리다.

간혹 시래기와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시래기는 무청이나 배추 겉잎을 생으로 쓰거나 삶은 후 말린 것이다. 배춧잎이나 무청을 모두 ‘시락(시래기)’이라 부르는 경상도 방언처럼 배춧잎 말린 것도 시래기라 불러도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상에선 으레 ‘말린 무청’ 시래기만을 지칭한다.

대중적으로 먹는 배추와 무에서조차 ‘허드레’로 취급했던 우거지와 시래기는 섬유소가 많고 무엇보다 맛이 좋아 여러 용도로 쓴다.

밥을 짓거나 국을 끓이고 생선을 조릴 때 많이 쓰는 식재료로 인기가 높다. 특히 섬유소가 부족한 뼈다귀해장국이나 매운탕, 선짓국 등에는 빠질 수 없는 재료다.

이처럼 한국인의 생활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채소가 배추다. 이만큼 일상에서 친숙하니 배추머리(코미디언 김병조)니 배추도사(만화 옛날옛적) 같은 캐릭터도 종종 등장했다. 과거 지폐 중 최고액권이었던 일만원권 지폐를 지칭하는 별칭으로도 쓰였다.

배추가 빠지면 한국인의 식탁이 휑하니 빈다. 폭염과 폭우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나 준 우리 배추가 있기에 그나마 겨우 버티는 늦여름 입맛이 다 든든하다.

갈치와 배추만 넣고 끓인 부두식당 갈치국
◇어디서 먹을까

▶부두식당 = 갈칫국. 국내산 갈치와 배추 속을 넣고 맑게 끓였다. 소금 간만 하고 끓여내니 감칠맛은 갈치가, 시원한 뒷맛은 배추가 각각 책임진다. 갈치 연한 살을 수저로 살살 긁어 국물과 함께 떠먹으면 배춧국의 담백하고 부드러운 국물이 식도를 타고 넘는다. 워낙 맑은 국이라 밥을 말아도 쉽사리 탁해지지 않는다. 만약 매운맛을 원하면 청양고추 다짐을 넣으면 된다. 제주시 애월읍 애월로13길 21.

▶상주식당 = 정말로 배추에 진심인 추어탕 노포다. 1957년에 문을 열었다. 대문 입구부터 배추를 전시해 놓았다. 노지(露地) 배추가 나지 않는 겨울엔 아예 가게 문을 닫는다. 추어탕인데 배추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삶아서 갈아 넣은 살점이 보드라운 배추에 섞여 있다. 뻑뻑하지 않고 시원하게 끓이는 경상도식 추어탕이다. 11월 30일까지 영업하고 무려 넉 달을 쉰다. 서둘러야 한다.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598-1.

▶외남반점 = 우거지 짬뽕이다. 원래 짬뽕에는 배추가 들어가는데 이곳은 배추에 방점을 찍었다. 여느 붉은 짬뽕 국물인데 막상 마셔보면 시원하고 구수하다. 짬뽕에 우거지만 넣었다고 이런 맛이 나지 않는다. 고기와 해물을 볶은 다음 우거지를 넣고 한소끔 다시 끓여냈다. 매끄러운 면발도 인기에 한몫한다. 외딴 시골에 위치했지만 어찌들 알고 찾아온다. 청정한 식당 옥상에서 우거지를 일일이 널어 말려 쓴다. 하루 50인분 한정. 경북 상주시 외남면 석단로 9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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