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업의 성공과 실패도 마찬가지다. 기획, 설계, 발주와 같이 ‘시공 이전’(pre-construction·프리콘) 단계에서 철저한 준비가 이뤄져야 이후의 시공, 운영 및 유지관리에 이르기까지 성공적으로 건설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손자병법’ 제1편이 전쟁 이전에 치밀한 계획을 강조하는 것과 같이, 건설 사업도 시공 이전 단계의 활동을 의미하는 ‘프리콘’이 중요하다. 시공 이전의 프리콘 활동이 전체 건설사업 비용에 미치는 영향은 90%에 달한다.
건설 선진국일수록 프리콘 단계의 글로벌 경쟁력이 높다. 글로벌 기업일수록 사업개발과 기획, 개념설계와 기본설계, 설계관리를 비롯한 엔지니어링 등 프리콘 역량이 탁월하다. 반면에 한국은 오랫동안 시공 중심의 건설 산업 구조가 고착화돼왔다. 우리 기업들은 해외건설시장에서 시공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해 왔다. 건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시공 이전 단계의 설계와 엔지니어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아직도 이렇다 할 변화는 없다. 법·제도와 건설업계의 관행은 여전히 프리콘 활동의 핵심인 설계와 엔지니어링 업무를 ‘건설용역업’으로 규정하고, 시공 업무를 보조하는 기능으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형편없이 낮은 용역 대가, 저가 수주를 부추기는 발주제도 등으로 인해 설계와 엔지니어링 업계는 저 수익의 악순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 수익 구조에서는 임직원의 임금도 낮을 수밖에 없고 우수 인력을 끌어 들일 수도 없으며 직원교육이나 디지털 전환을 위한 투자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도 어렵고 건설업계를 선도하면서 산업혁신을 이끌 수도 없다.
25년 전 ‘건설산업기본법’이 제정되면서 ‘건설 사업 관리’(Construction Management·CM)’가 명문화되었다. 지금도 건설 사업 관리를 ‘건설공사에 관한 기획, 타당성 조사, 분석, 설계, 조달, 계약, 시공관리, 감리, 평가 또는 사후관리 등에 관한 관리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법에서 정의하고 있지만, 원래는 시공 이전 단계인 프리콘 활성화를 통해 건설 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건설 산업을 선진화하고자 한 취지였다. 그런 취지와 달리, 지금의 건설 사업 관리는 법·제도건 건설업계의 관행이건 간에 어느새 ‘감리’와 동일시되고 있다. 감리는 시공과정이 법령이나 기준, 설계도서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술 지도를 하는 것이다. 사실상 프리콘 이후의 활동이기 때문에 건설 사업 관리와 동일시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건설 사업 관리라는 단어는 감리와 다를 바가 없다. 감리업체들도 자신들의 업무를 건설 사업 관리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건설 사업 관리 기업부터가 자신을 ‘프리콘 기업’이라고 선언했다. 대형 종합건설기업들도 미국 기업으로부터 프리콘 노하우를 전수받거나, 자체 사업과 민간사업에 활용하는 폭을 넓히고 있다. 공기업에서도 부분적이긴 하지만 시범사업을 도입한 사례가 있다. 한국에서 ‘건설 사업 관리=감리’라는 인식이 굳어가다 보니 건설 사업 관리라는 단어를 프리콘으로 대체해서 감리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듯하다.
시공 이전 단계에서 원가, 일정, 품질 등에 관련한 제반 사항을 치밀하게 계획해서 건설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게 하는 사전 활동이 프리콘이다. ‘손자병법’ 제1편처럼 건설 사업의 성공도 치밀한 계획에서 출발해야 가능하다. 앞으로 프리콘 활동의 강화를 통해 건설 산업을 혁신하고자 한다면, 개별 건설기업만이 아니라 범 건설업계의 협력과 발주자의 지원 및 법·제도의 개선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