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측 모두 ‘출구전략’이 부재한 상황인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종국엔 ‘국가비상사태 선포’ 카드를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이날 강경 반응 역시 국가비상사태 발동을 위한 수순 밟기 차원이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미 정치권이 그야말로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국가비상사태 선포 테이블 위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동 결렬 직후 트위터에 “완전히 시간 낭비였다”며 여론전을 이어갔다. 그는 펠로시 의장이 ‘노’(NO)라고 대답했을 때 “나는 작별인사를 했다.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라고 토로했다. 상원의장을 겸임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회동 후 “대통령은 자신의 우선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단호한 입장을 취할 것임을 오늘 분명히 했다”며 “민주당 지도자들은 셧다운을 해결하기 위해 협상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고 거들었다. 회동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지난해 말 고용지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수치 등을 언급, 자신의 실적들을 차례로 열거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남쪽 국경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장벽건설을 거듭 촉구했다. 그간 자신이 밀어붙였던 사안들이 모두 긍정적 효과를 낸 만큼, 장벽연설 역시 그 전철을 밟아야 한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집무실에서 반(反) 인신매매 법안에 서명한 자리에서도 기자들에게 “우린 (민주당과의)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고 ‘합의’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만약 (합의가) 불발된다면 그 길(국가비상사태 선포)로 갈 수밖에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더 나아가 “내겐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할 절대적인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목적(장벽 건설)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정부 문을 계속 닫을 수 있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일(10일)엔 남쪽 국경을 직접 방문하는 초강수를 두며 여론전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장벽건설에 ‘올인’하는 건 결국 국가비상사태를 염두에 둔 행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과의 협상 결렬 때를 대비한 수순 밟기라는 의미다. 이와 관련,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 변호인들이 지난 3일부터 국가비상사태 선포의 적법성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악시오스도 “대통령 주변에선 국가비상사태가 자칫 대통령 권한 남용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최종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이날 친(親) 트럼프 매체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전한 최고의 해법은 의회에서 장벽예산을 통과시키는 것”이라면서도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는 게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비상사태 선포 땐..파국으로 치달을 듯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게 되면, 장벽건설 예산이 빠진 이른바 민주당표 예산안과 관계없이 국방부 예산과 병력을 동원해 장벽을 건설할 수 있다. 19일째로 접어든 셧다운 사태도 자연스레 해결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장벽건설 공약을 지키며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고, ‘하원’을 잃은 공화당으로서도 민주당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연방정부를 다시 운영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이날부터 셧다운 해소를 위해 4개의 자금조달 법안을 표결에 부칠 계획이나, 백악관은 “국경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광범위한 합의 없이 4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도, 거부권 행사로 저지하겠다는 얘기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경우 미 정치권이 파국으로 피할 길이 없다는 데 있다. 이미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위헌’으로 규정한 민주당은 장벽 건설을 저지하기 위한 고소 진행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민주당 슈머 원내대표는 회동 결렬 직후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었다”며 “회의장에서 일어나서 그냥 걸어 나갔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했다. 일각에선 양측 간 충돌에 임박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관련 최종 수사 보고서 발표까지 맞물리면서 ‘탄핵론’이 다시 부상할 수 있다고 본다. 미 언론들은 “정치권의 ‘기 싸움’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