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첫 선에 꼽은 추천서가 바로 ‘주영편’이다. 조선의 실학자 정동유가 조선의 역사문화와 자연환경, 풍속과 언어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고증하고 분석해 쓴 짧은 글을 백과사전처럼 모은 만필집이다. ‘주영’은 ‘낮이 길다’라는 뜻이며, ‘편’은 ‘엮다’라는 뜻으로 제목을 풀이하자면 ‘여름날, 긴 낮 시간의 무료함을 달래려 쓴 책’이라는 뜻이다.
첫장부터 “긴 여름날의 답답함을 잊고 지낼 방법이 없구나! 장기나 바둑 대신에 무언가에 대한 글을 써 봐야겠다”며 가볍게 시작하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내려놓지 못할 정도로 흥미롭다. 주영편에는 당시 만국(세계 여러나라)에는 있지만, 조선에만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바늘이니, 반드시 중국의 시장에서 사 온다. 둘째는 육축(여섯 종류의 중요한 가축) 가운데 소와 양을 우두머리로 치는데, 소는 기르나 양은 기를 줄 모르는 것이다. 셋째는 육지에 다닐 때 수레가 없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수레가 없다는 것은 당시 나라의 발전과 민생의 안정을 생각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훈민정음’을 해석한 부분이다. “중국 사람들이 말하는 36자모(자음과 모음으로 갈라서 적을 수 있는 낱글자)라는 것이 실상은 23개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의 문자 가운데 오직 ‘훈민정음’만이 그것을 밝히고 있다.”
주영편은 훈민정음의 음운학적 특성과 문자로서의 우수성에 대해 이론적으로 정밀하게 분석하고 그 슬기로움을 통찰, 국어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책의 저자인 현동 정동유(1744~1808)는 조정에서 내려 주는 벼슬도 마다하고 평생 독서와 저술로 일관했다고 한다. 그의 제자인 유희 선생(1773~1837)은 스승인 정동유 선생의 ‘주영편’을 더 깊이 연구해 ‘훈민정음’에 대한 탁월한 이론서인 ‘언문지’를 펴냈다. 스승과 제자가 우리 국어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것이다.
“10년 터울로 연령이 다른 네분이 인생사 전반을 주제로 나운 대담이 실린 이 책에는 향기로운 삶의 경륜과 영혼을 울리는 정신세계의 품격이 아낌없이 드러나 있습니다.” ‘대화’는 월간 샘터 지령 400호 기념으로 지난 2003년 4월 이뤄진 피천득, 김재순, 법정, 최인호의 대담을 채록한 책이다.
이 이사장은 “우리시대 최고 지성인들이 한 자리에서 나이에 따라 관록이 묻어나는 인생관을 드러내며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며 이 책을 추천했다. 모두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는 수필가이며 영문학자인 피천득과 샘터사 김재순 고문의 대담이 실려 있다. 오랜 세월 이어져온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리사욕 없이 살아온 두 분 원로의 삶의 경륜을 담아냈다.
2부는 법정 스님과 소설과 최인호의 대담 내용으로, 종교, 죽음, 사랑, 가족, 행복, 교육 등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철학적 주제 전반에 대한 품격있는 대화 내용을 실었다. 같은 주제를 놓고도 10년씩 세대 차이를 가진 이들이 어떤 다른 관점으로 느끼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다. 당시 각각 90대(피천득), 80대(김재순), 70대(법정), 60대(최인호)의 연령으로 자신들이 겪고 느낀 바를 각자 다른 길이의 삶을 통해 다른 모습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