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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반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동의를 받아야 하는 폐쇄회로(CC)TV와 달리 부모가 손쉽게 녹음된 음성을 확인해 학대 여부를 파악할 수 있어서다. 보육 교사들은 부모들이 느끼는 불안감에는 공감을 나타내면서도 CCTV로도 부족해 녹음기까지 동원해 24시간 감시하는 셈이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잇딴 어린이집 아동학대에 녹음기 판매량 급증
최근들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보육시설내 아동학대 보도가 잇따르자 온라인쇼핑사이트에서는 ‘유치원 녹음기’ 코너가 등장하는 등 소형 녹음기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해당 코너에선 목걸이형부터 녹음기처럼 보이지 않는 유에스비(USB) 형태 등 다양한 유형의 소형 녹음기를 판매하고 있다.
G마켓에 따르면 ‘보이스레코더’의 품목명으로 분류되는 녹음기 판매량은 아동학대 보도 전후인 6~8월을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위메프는 7월16일~8월15일까지 최근 한 달 기준 녹음기 판매량이 전년 대비 18.22% 늘었다.
온라인 쇼핑사이트를 통해 녹음기 판매하는 정보통신기기 업체 사장 A씨는 “유치원 아이들이 잘 잃어버리기 때문에 목걸이형이나 가방에 넣을 수 있는 유에스비형에 대한 문의가 많다”며 “아동학대 보도 이후 주문이 2~3배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CCTV를 상시 확인할 수 없는 만큼 녹음기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5세 아들을 키우는 주부 김모(36)씨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아동 학대를 보고 있으면 불안한 마음이 자꾸 드는 게 사실”이라며 “아이 편에 녹음기라도 쥐여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부모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5세, 7세 형제를 키우는 서모(33)씨도 “녹음기 덕에 적발돼도 동의 없는 녹취는 법적 효력이 없어서 처벌은 불가능하고 사직처리만 된다고 들었다. 보육교사 입장에선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이 걱정에 밤잠 설치는 부모들로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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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교사들은 녹음기 휴대가 부모와 교사간 신뢰만 무너뜨릴 뿐 실질적인 예방효과는 없다고 반박한다.
경기도의 한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보육교사 김모(26)씨는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녹음을 하는 것은 상호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동”이라며 “교사들의 사기와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결과만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이집 교사 3년 차인 이모(28)씨는 “약이나 여벌옷 검사를 위해 아이들의 가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아이 가방에 있는 초소형 녹음기를 발견한 적이 있다”며 “얼마나 긴 시간 감시당했을까 생각하니 일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허탈했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아이들 돌보는 보람으로 힘들어도 버티고 있었는데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유치원 교사 10년 차인 김모(34)씨도 “힘들어도 성심성의껏 아이들을 챙겨왔는데 24시간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 상실감은 어떻게 보상할 것이며 우리의 인권과 교권은 누가 지켜주느냐”고 분개했다.
전문가들은 교사 처우개선과 함께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관리자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정욱 덕성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교사 처우가 나빠 아동 학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면죄부는 안된다”면서도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다. 종일반 기준이라면 최소한 교사가 오전·오후로 나뉘어 2교대로 근무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사설 보육기관들까지 제도적 개선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재정·제도적 지원과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학대가 발생한 곳은 폐쇄 조치하고 가해 교사 또한 자격을 박탈해야 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