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겸재 정선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박연폭포’가 최첨단 디스플레이 안에서 시원한 물보라를 내며 살아 움직인다. 조선후기 화가 조희룡의 걸작 ‘홍매’는 라디오의 안테나가 돼 임의적으로 주파수를 잡아내 다양한 소리를 들려준다. 단아한 모양의 청화백자 안에는 익살맞게 생긴 로봇 용 한 마리가 하늘을 휘젓고 있다.
국보인 ‘훈민정음 해례본’과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을 소장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재단 설립 후 처음으로 현대미술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다음 달 23일까지 여는 ‘올드 앤 뉴-법고창신: 현대작가, 간송을 기리다’ 전은 간송 전형필(1906~1962)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해 33명의 젊은 작가들이 간송에 바친 오마주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한 문화재를 재해석한 40여점을 볼 수 있는 전시다.
간송은 평생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고 지키는 데 헌신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간송 덕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시작으로 조선 후기 겸재 정선과 혜원 신윤복, 단원 김홍도 등의 회화, 조선백자와 고려청자 등이 우리 땅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간송은 1938년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을 세워 자신이 수집한 문화재와 작품을 공개하며 우리 민족의 문화적 자긍심을 널리 알렸다.
전인건 간송미술문화재단 사무국장은 “간송 탄생 110주년을 맞아 어떤 행사를 할까 고민하던 중 일제강점기 문화로 나라의 정신을 지키려 한 간송의 신념이 현시대에 맞는 형태로 유효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33인의 작가가 자신의 개성을 살린 만큼 작품도 다양하다. 영상작가 팀인 김기라×김형규는 실상사·미황사, 대흥사의 잔잔한 일상을 영화로 만들어 간송이 추구한 한국적인 미의식의 근원을 되짚어 본다. 팝아트작가인 윤기원은 간송의 고교와 대학 시절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의 얼굴을 팝아트 초상화로 담아냈다.
|
서양화가 이세현이 그린 붉은 산수화 ‘비트원 레드’는 겸재의 삼원법을 차용해 원근법에 충실한 서구의 풍경화와 다른 풍경을 선보인다. 서양화가 송현주는 간송을 만나러 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던 일본의 미나미 지로 총독과 간송의 삶을 극명하게 대비한 그림을 그렸다. 사진작가 정희승은 간송이 세운 ‘보화각’ 내부의 모습을 정물화 같은 사진으로 표현했다.
현대미술작품 외에도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유의 고미술품 두 점도 함께 나왔다. 겸재의 전성기인 40~70대에 그린 ‘풍악내산총람’과 ‘통천문암’이다. 특히 강원 통천군에 자리잡은, 마주보고 선 바윗돌을 그린 ‘통천문암’은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그린 작품으로 겸재 작품 중 정수라고 평가받는다. 간송미술문화재단에 따르면 전시에 참가한 작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한국화가로 겸재를 꼽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