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양궁 '맏언니' 전훈영…경기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빛났다

공지유 기자I 2024.08.04 10:27:21

코로나19 여파로 도쿄올림픽 참가 무산
3년간 절치부심하며 서른 넘어 첫 출전
임시현·남수현 동생들부터 배려하는 맏언니
정의선 회장, 감사의 뜻 전달…공로 격려

[이데일리 공지유 기자] 올해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이 새 역사를 쓴 가운데 대한민국 여자 양궁 대표팀 맏언니 전훈영(30)의 활약이 주목받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 두번째)이 3일(현지시간) 파리 대회 여자 양궁 개인전 시상식 직후 남수현(왼쪽 첫째), 전훈영(오른쪽 둘째), 임시현(오른쪽 첫째) 등 국가대표 선수들을 만나 격려하고 있다.(사진=대한양궁협회)
전훈영은 4년 전 도쿄 올림픽 메달 후보로 기대를 모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올림픽이 1년 뒤로 밀렸고 다시 진행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줬다. 이후 3년간 절치부심하며 다음 올림픽을 기약해야만 했다.

2014년 세계대학선수권대회 2관왕 이후 국제 대회 수상 이력이 없던 전훈영은 올해 4월 국가대표 선수단에 승선하며 ‘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을 이뤘다. 막상 대표팀에 선발되니 같이 뽑힌 2003년생 임시현, 2005년생 남수현과는 10살 안팎 터울이 나는 언니였다. 이들 역시 올림픽 첫 출전은 마찬가지였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일(현지시간) 양궁 여자 개인전 시상식 후 남수현(왼쪽), 전훈영(가운데), 임시현(오른쪽)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대한양궁협회)
전훈영은 언니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내려놓으며 동생들을 살뜰히 챙겼다. 대표적인 사례가 파리에 도착해 선수단 숙소를 정할 때였다. 숙소가 2인 1실로 돼 있어 한 명은 다른 종목 선수와 같은 방을 써야만 했다.

통상 한국식 문화에 따르면 맏언니가 막내와 같은 방을 써야 하지만, 전훈영은 먼저 손을 들고 “탁구 선수와 방을 함께 쓰겠다”고 했다. 본인과 마찬가지로 첫 올림픽인 후배들을 위해서였다. 코칭스태프 가운데 한 명이 “태릉 시절도 아니고 타 종목 선수와 열흘 넘게 있는 게 괜찮겠냐”고 묻자 전훈영은 “동생들이 편하게 지내면 나도 좋다”며 쿨하게 답했다고 한다.

경기장 안에서도 전훈영은 자신의 몫을 톡톡히 했다. 활을 빠르게 쏘기 때문에 단체전 1번 주자로 나섰다. 양궁 단체전에선 세트당 120초가 주어지는데, 선수 3명이 120초 안에 각 2발씩 총 6발을 쏴야 한다. 첫 주자가 활을 빨리 쏘면 두번째, 세번째 선수는 그만큼 시간 여유를 갖는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일(현지시간) 오전 파리 대회 여자 양궁 개인전 16강전에서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사진=대한양궁협회)
지난달 28일 중국과의 여자 단체 결승전에선 전훈영은 5차례나 10점을 쐈다. 특히 연장 승부 결정전(슛오프)에서도 10점을 쏘면서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2014년 이후 10년간 국제 무대와 인연이 없던 전훈영이 성인 무대에서 첫 금메달을 따낸 순간이었다. 개인전에서도 전훈영은 4강에서 금메달리스트 임시현과 마지막 세트까지 가는 접전(4-6)을 벌였다.

개인전이 열린 3일 낮에도 전훈영은 임시현에게 장난을 걸며 앵발리드 경기장으로 함께 걸어 들어갔다. 경기 결과에 따라 4강전에서 맞붙을 수 있는 상대였지만, 대표팀 동료이자 맏언니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훈영의 활약 덕분에 여자 양궁 대표팀은 단체전 10연패뿐 아니라 혼성전, 개인전까지 여자 선수들이 출전한 모든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국가대표 3명 모두 올림픽 첫 출전이라서 큰 경기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세간의 평가를 딛고 이뤄낸 성과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일(현지시간) 파리 대회 여자 양궁 개인전 시상식 직후 양창훈(왼쪽) 감독을 만나 격려하고 있다.(사진=대한양궁협회)
3일 경기가 끝난 직후에는 대한양궁협회장 겸 아시아양궁연맹 회장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전훈영을 찾아와 격려했다. 비록 개인전 메달은 획득하지 못했지만, 대회 기간 내내 후배 선수들을 다독이고 이끈 전훈영에게 정 회장은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

전훈영은 이날 취재진과의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 인터뷰에서 “양궁 대표팀을 향한 많은 걱정과 우려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전 종목에서 금메달 3개를 땄다”며 “부담이 컸는데 목표를 이뤄냈다. 팀으로 보면 너무 좋은 결과를 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준비하는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해서 후회는 없다. 후련한 마음이 제일 크다”고 덧붙였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일(현지시간) 양궁 여자 개인전 시상식 후 김걸 현대차그룹 사장(오른쪽 두번째)과 양궁 국가대표 남수현·전훈영·임시현, 양창훈(오른쪽 첫번째) 감독, 김문정(왼쪽 첫번째) 코치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대한양궁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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