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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아예 풀지도 않고 찍은 학생과 오류가 있는 문항 때문에 긴 시간을 뺏겨 다른 문제를 풀지도 못한 학생은 구분해야 합니다. 어떻게 모든 학생에게 같은 점수를 줄 수 있나요.”(서울 강남구 재수생 고모씨)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출제 오류 논란이 불거진 과학탐구 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에 대해 전원정답 처리 판결이 내려지면서, 수험생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대입 과정에서 수험생 각자의 유불리 상황이 변화하게 된 것이 직접적인 배경이지만, 이러한 혼란을 초래하게 한 평가원에 대해서는 수험생들이 한목소리로 불만을 쏟아냈다.
1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생명과학Ⅱ 응시생 92명이 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정답 결정 취소소송에 대해 평가원의 출제 오류가 맞다며 수험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평가원은 이날 재판 결과에 승복하고 해당 문항에 대해 ‘정답없음’(전원정답) 처리하기로 했다.
이날 재판부의 정답 취소 판결과 평가원의 전원정답 처리 소식을 접한 수험생들은 엇갈린 반응을 내놓았다. 대체로 전원정답 결정을 반기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지만, 일부에선 문제를 풀기 위해 긴 시간을 들인 학생과 문제 풀이를 포기한 학생 모두 같은 점수를 받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당초 평가원이 발표한 정답 기준으로 해당 문항의 오답률은 75.4%에 달했던 상황이라 수험생 대부분은 전원정답 결정에 기쁜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서울 중구 환일고 3학년 이모씨는 “20번 문제를 푸는데 한 가지 경우에서 모순이 나오길래 소거법(오답부터 지워나가는 방법)으로 풀었다”며 “정답지에는 다른 답이라고 돼 있어 내가 잘못 생각한 줄 알았는데 문항 오류로 전원정답 처리가 됐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재수생 박모씨는 “문항이 오류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미뤄뒀던 문제도 시간이 없어서 맞출 수 있는 기회를 날렸다”며 “한 문제 오류 인정으로 나와 같은 학생들이 입은 피해가 보상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정의는 지켜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들어간 노력이 학생마다 다른데도 전원정답 처리가 된 것은 불공평하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 강남구의 재수생 고모씨는 “아예 문제 풀기를 포기하고 찍었던 학생도 있고, 계속 풀어보려 도전하다 시간을 뺏겨 다른 문제 풀이에도 지장을 받게 된 학생도 있을 것”이라며 “수험생 간 노력의 편차가 다른데 똑같이 점수를 받는다는 점은 다소 억울하다”고 말했다.
혼란을 해소하려 노력해야 할 평가원이 오히려 문제를 키운 점에 대한 불만도 쏟아졌다. 이의신청이 제기됐을 당시 이를 받아들였더라면 지금처럼 정답 변경 후 성적이 달라져 혼란을 빚을 상황이 안 생겼을 것이라는 말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전원정답이 되면 평균 점수가 올라가게 되면서 등급 커트라인이 상승한다”며 “1등급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학생이 전원정답 인정에 따라 2등급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의 동성고 3학년 김모씨는 “애초에 평가원이 오류가 있는 문항을 출제한 것부터가 잘못”이라며 “처음에 이의신청이 제기됐을 때 깔끔하게 인정하고 현 상황까지 오는 것만 막았어도 학생들이 이렇게 가슴 졸일 일은 없지 않았겠나 생각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