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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과 인문학 연결한 방대한 '토목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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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운 기자I 2016.11.02 06:29:10

미로, 길의 인문학
김재성ㅣ632쪽ㅣ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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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내게 주어진 주문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되도록 빠른 길을 만들어라.’ 자동차든 사람이든 상관하지 마라. 길 위에 있는 모든 것이 빠르게 길에서 벗어나게 하라. 물 흐르듯이 빠져나가게 만들어라. 누군가 머뭇거려야 한다면 그것은 결함이다.”

언덕을 깎아내고,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물을 건너는 다리를 놓았다. 그 위에 아스팔트 도로가 깔렸고 이내 자동차가 달렸다. 도시와 도시가 이어졌고 국가와 국가가 연결됐다. 건설공학을 전공한 국제기술사이자 토질·기초기술사인 저자는 국내외 곳곳에 길을 내는 일을 한평생 업으로 삼았다. 그런데 새로운 길을 낼수록 길은 사람과 물류가 오고 간 ‘도로’만을 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인류의 문명발달과 길을 내는 일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사람이 다니는 길 외에도 마차가 다니는 도로, 물이 흐르는 수로, 배와 비행기가 다닐 수 있는 항로는 물론이고 카톡을 주고받는 비트의 길까지 길을 만드는 것 자체가 곧 새로운 문명의 시작이거나 이전 문명의 극복이었다.

그러나 정작 길 자체에 대한 담론이 점점 줄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길은 단순히 ‘어딘가로 옮기기 위해 필요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과 눈길처럼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 통로고, ‘올바른 인생의 길’처럼 삶의 목표를 제시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길에 대한 통합적인 사유를 해보기로 작정한 저자는 길과 관련한 숱한 자료를 찾아내 서로 융합하고 자신의 경험을 보태기로 한다.

책은 저자가 ‘길’이 가진 여러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찬찬히 찾아낸 방대한 결과물이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속 도서관의 미로에서 생각을 잇는 ‘길’을 상기한다. 혜초의 순례길과 성 야고보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연결하며 ‘나를 찾아 떠나는 길’을 살핀다. 유라시아 초원길과 차마고도 등 고대 동·서양의 교역로에서 문명의 교류를 본다. 계절풍과 무역풍으로 생긴 바닷길과 대양과 대양을 잇는 운하를 통해 미지의 세계를 이으려 한 인간의 의지를 떠올린다. 여기에 토목공학의 정수로 평가받는 터널과 다리건설 등 구체적인 예를 들며 길이 지닌 구체성에도 접근한다.

길에 대한 사유의 끝은 ‘길’에 대한 회복이라고 했다. 길은 애초에 소통의 장에서 생겨났고 사람과의 만남이 벌어지던 장소였다는 것을 되짚는다. 길이 새롭게 놓일수록 정작 인간과 인간 사이, 국가와 국가 사이에 단절이 생기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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