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산후조리원 내 모자동실(母子同室)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임신부들의 반발이 거세다. 출산 후 실전 육아를 앞두고 충분한 안정과 휴식을 취하기 위한 산후조리원이 육아 스트레스가 시작되는 장소가 될 것이란 불만이다. 모자동실은 아기가 신생아실 대신 산모와 한방에서 생활하는 방식이다.
올 상반기 현재 전국 산후조리원 수는 총 617곳. 복지부는 전국 611곳의 민간 산후조리원을 대상으로 모자동실 운영계획 수립을 의무화하도록 연말까지 법령을 개정할 방침이다.
지난해 모자보건법 개정으로 이미 지난 6월부터 전국 6곳의 공공산후조리원은 모자동실 운영이 의무화됐다. 그러나 본지 취재 결과 공공산후조리원은 현재 민간 산후조리원과 비슷하게 하루 2~3시간만 모자동실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모자동실 운영 방침이 산후조리원 내 산모들의 현실을 반영치 못한 탁상공론식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조리원 감염 3년새 7배 급증에 ‘모자동실’ 특단 조치
산후조리원 내 모자동실 운영 방안은 지난 10월 복지부가 발표한 ‘산후조리원 감염관리 종합대책’에 포함된 내용이다. 산후조리원 종사자 등에 의해 신생아실 집단 감염 사태가 잇따르자 감염 전파경로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다.
복지부에 따르면 산후조리원 감염건수는 지난 2013년 56건에서 2014년 88건, 2015년 414건으로 3년새 7배가 넘게 증가했다. 올 상반기에만 산후조리원 감염사례는 총 246건으로 집계됐다.
감염병 유형별로는 장 관련 질환인 로타바이러스 감염이 185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감기 184건 △호흡기계질환인 RS바이러스 감염 162건 △기관지염 46건 △잠복결핵 45건 △폐렴 39건 △장염 37건 △뇌수막염 15건 등의 순이었다.
복지부 출산정책과 관계자는 “신생아에 영향을 미치는 A형간염, 수두, 독감 등 고위험 다빈도 감염성질환에 대한 산후조리업 종사자의 예방접종을 의무화하고 방문객 신생아 접촉금지, 신생아실 밀집 억제 등의 조치에 나서기로 했다”면서 “모자동실 운영계획을 의무화 한 것은 신생아실 내 감염 차단과 산모와 신생아의 애착형성을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임산부들은 현장 상황과 산모들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분개하고 있다. 연말 출산을 앞둔 한 임신부는 “고작 2주 동안 아이와 24시간 붙어 있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애착형성을 운운하는 것부터 이해가 안 된다”면서 “산후조리원 이용을 포기하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산후조리원 설치를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공공산후조리원은 올 6월부터 모자동실 운영이 의무화됐다.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7조6에 명시된 지자체의 산후조리원의 설치기준을 보면 임산부실은 영유아 침대·목욕설비 등 임산부와 영유아가 함께 생활하는데 필요한 시설을 갖춰 모자동실 형태로 운영해야 한다. 또 신생아실은 신규로 입원하는 영유아의 감염 여부 등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용도로 운영해야 한다. 24시간 아이와 엄마가 함께 하는 ‘완전 모자동실’을 운영하라는 얘기다.
그러나 대부분 공공산후조리원은 ‘부분 모자동실’로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지방 공공산후조리원에서 근무하는 운영실장은 “복지부로부터 모자동실을 운영하라는 지침을 받았지만 산모들의 반대로 완전 모자동실 운영은 불가능하다. 오전과 밤 시간대 아기들은 산모와 떨어져 따로 신생아실에서 관리를 받는다”며 “산모들은 오후 2~3시간 가량 신생아와 같이 있는 게 전부”라고 전했다.
복지부는 최근 민간산후조리사업자를 대상으로 모자동실 운영계획 수립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연말 안에는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를 거쳐 개정안을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우향제 복지부 출산정책과장은 “개정안이 실행돼도 모자동실 운영계획을 세우지 않은 산후조리원을 따로 제재하거나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면서도, “다만 산후조리원 평가지표에 모자동실 항목을 넣어 자체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후조리업자도 모자동실 운영이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산후조리원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모자동실 운영을 위한 정부의 별도 비용이 지원되지 않는 상황에서 시설 구조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며 “감염 예방이 목적이라면 아기가 질병이 의심될 때 따로 1인 격리할 수 있는 방을 만들어 운영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