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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한이 서린 듯한 구슬픈 목소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10년도 넘은 노래지만 듣다 보면 왠지 모르게 울컥하고 눈물이 날 것 같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소리꾼 장사익(67)은 세월을 품은 소리로 인생을 노래한다. 우연히 화단 앞을 지나다가 장미꽃 뒤에 초라하게 피어 있는 찔레꽃을 보고 만든 곡이 바로 ‘찔레꽃’이란다. 당시 인생의 밑바닥에 있던 자신의 처지와 닮았다고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며 만들었던 노래가 지금의 장사익을 있게 한 대표곡이 됐다.
올 초 성대수술을 받으며 잠시 공백기를 가졌던 그가 다시 무대로 돌아온다. 오는 10월 5일부터 7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콘서트 ‘장사익 소리판: 꽃인 듯 눈물인 듯’을 시작으로 전국투어에 나선다. 공연에 앞서 서울 종로구 홍지동 자택에서 만난 장사익은 “아프고 난 뒤 내가 걸어온 길도 돌아보고 음악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며 “다시 노래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좋은 일이 있어야 웃지만 사실은 웃어야 좋은 일이 생긴다”며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 인생은 40부터…늦깎이로 데뷔해 성공하기까지
나이 서른만 넘어도 취업하기 힘든 세상이다. 하지만 장사익의 인생은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꽃을 피웠다.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서 돼지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교 졸업 후 45세까지 무려 15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딸기장수, 보험회사 직원, 외판원, 경리과장, 카센터 직원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 카센터 일을 마지막으로 태평소를 통해 음악에 첫발을 내디뎠다. 어릴 때부터 태평소에 관심이 많던 장사익은 김덕수패를 따라다니며 태평소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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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딱 한 번만 노래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1994년 11월 신촌 예극장에 첫 무대를 마련했는데 당시 100석 공연장에 400명이 몰렸다. 이틀 동안 무려 800명이 그의 공연을 찾았다. 그러곤 1995년 우리 나이로 마흔여섯 살이 되던 해 데뷔앨범 ‘하늘 가는 길’을 냈다.
“꿈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다 실패하고 결국 마흔이 넘어 데뷔를 했다. 한 번일 줄 알았는데 그게 20년을 이어온 거다. 운도 좋았지만 그동안 하나둘 쌓아온 인생의 벽돌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 같다. 하루아침에 얻은 일확천금은 하루아침에 없어지지만 차근차근 살아온 사람의 생명력은 오래 간다. 금방 승부를 내려고 하면 안 된다. 4년 전부터 준비를 해서 환갑 때 마라톤 완주를 한 적이 있다. 많은 것이 마음먹고 행동하면 이뤄지더라.”
그는 우리네 인생을 꽃이 피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모든 세상의 식물은 우리 모르게 꽃을 피운다.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아무리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자신이 즐기지 못하면 말짱 헛거다. 이 세상에 이바지하고 ‘참 멋있게 잘살았다’고 할 수 있으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원 없이 하다가 죽으면 그게 행복이고 꽃을 피우는 거다.”
△ 성대 결절…“노래 못하는 줄 알고 두려웠다”
장사익은 지난해 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성대에 손가락 한 마디 만한 혹이 있다는 것이다. 잠시 노래하는 것을 멈추고 올 2월에 수술을 받았다. 이후엔 긴 재활치료가 이어졌다.
“처음 성대에 이상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놀란 정도가 아니라 충격이었다. 마라톤선수가 다리가 부러지거나 테니스선수가 손가락 부상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다. 노래하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것 아닌가. 이러다가 영원히 노래를 못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다.” 노래를 잃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 탄식이 그치질 않았단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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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그가 다시 노래를 하게 됐다. “노래를 다시 찾았을 때의 환희와 행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돌이켜보니 노래를 불렀던 시간이 내 인생의 꽃이었고, 노래를 잃고 지낸 몇 개월이 눈물이더라.” 10월 공연에 앞서 지난 6월 KBS TV ‘가요무대’의 브라질 상파울루 현지공연 녹화에서 소리의 판을 다시 열었다. “수술만 잘되면 다시 건강하게 노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열심히 하다 보니 기회가 다시왔다. 의사의 말이 잘못하면 평생 쉰소리가 날 수도 있다고 하더라. 치료를 받으면서 10월 콘서트의 주제를 정했다. 희로애락을 경험한 내 인생 이야기다.”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할 예정. 1부에선 김춘수 ‘서풍부’, 허영자 ‘감’, 마종기 ‘상처’ 등 시에 곡을 붙인 노래를 서곡처럼 이어간다. 2부에서는 ‘동백아가씨’ ‘님은 먼 곳에’ ‘봄날은 간다’ 등 장사익을 대표하는 곡이 울려퍼진다. 데뷔 20주년이던 2년 전 콘서트의 주제가 초심이었다면 이번엔 20년 후까지 노래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가수 인생의 2막을 여는 거다. 시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 흥미롭고 재밌다. 이번에 선보일 노래에는 ‘나이 든 티 내면서 제대로 살자’는 의미를 담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 인생이 행복해진다. 짜증만 내면 잘되던 일도 안 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어봐야 진짜 즐겁고 행복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인생은 어차피 역경을 헤쳐가는 과정이다.”
△ 내 음악은 청년기…“노래할 수 있다면 그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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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하나에도 열정과 정성, 진지함이 들어가 있어야 심금을 울릴 수 있다. 무대서 내가 에너지를 발산하는 대로 관객이 함께 호흡한다. 구슬프게 부르면 슬퍼하고 힘찬 노래를 부르면 희망을 떠올린다. 3000석 극장에서 공연을 하면 3000개의 힘을 가진 거인이 되는 거다. 노래 하나에도 목숨을 걸면 좋은 기운이 오롯이 전달되는 것 같다.”
장사익은 자신의 음악인생을 ‘청년기’라고 부른다. 이제 데뷔 20주년을 갓 넘겼으니 반백년을 노래한 사람에 비하면 청년이란 것이다. “음악은 곧 내 인생의 기록이다. 40대에는 40대의 이야기를, 환갑이 넘은 후에는 60대의 내 인생을 이야기한다. 앞으로 20년 후면 80대가 되는데 그때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도 삶과 죽음, 자연 등의 주제를 계속해서 노래에 담으려 한다. 봄은 봄대로 철 따라 흐르고 사람은 나이 먹은 대로 노래하는 것이 진정한 생명력이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게 선생이란다. “나쁜 사람에게선 ‘저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고 좋은 사람에게선 이로운 점을 배운다. 아름답고 순수하게 채우려는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성장할 수 있다. 앞으로도 위로와 치유의 노래를 들려주면서 늙어가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다. 팬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시간을 즐기면서 기다린다. 나이 든다는 건 슬픈 게 아니라 멋진 거다.”
△소리꾼 장사익은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국악인인 장사익은 선린상업고등학교와 명지대를 졸업했다. 1995년 1집 ‘하늘 가는 길’을 시작으로 2014년 ‘꽃인 듯 눈물인 듯’까지 8장의 개인앨범을 발표했다. 대표곡으로는 ‘찔레꽃’ ‘꽃구경’ ‘봄날은 간다’ ‘하늘 가는 길’ 등이 있다. 2006년 국회 대중문화 미디어대상 국악상과 1996년 KBS 국악대상 금상을 수상했고, 1995년부터 현재까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친선대사로 활약하고 있다. 2007년 환경재단이 선정한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의 목록에도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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