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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경영'의 성장기

박철근 기자I 2013.06.02 11:46:11

이건희 삼성회장의 20살 된 아들 이야기

[이데일리 박철근 기자] 제 이름은 ‘이신경영’입니다. 저는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어요. 이제 며칠 후면 20살 생일을 맞습니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인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세요.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저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이 남달라서 제가 태어한 과정이 파란만장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허우대만 멀쩡한 사람이 아닌 내실이 꽉 차고 강한 체질을 지닌 자식이기를 바랬대요. 그래서 무려 1800여명의 삼성 임원들과 석 달 가까이 해외에서 밤세워 회의하며 어떻게 키울지를 고민했다네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제가 태어난 지 100일이 조금 지났을 때에는 제가 제대로 클수 있도록 별도 보육시설인 사무국까지 설치했다고 하더라구요.

아버지를 비롯한 삼성 식구들의 많은 관심 속에 무럭무럭 자라던 저는 어린 시절 큰 위기를 맞았어요. IMF(국제통화기금)라는 낯선 단어가 대한민국을 강타했죠. 어떤 사람들은 나라가 망하는 것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죠. 이때 제가 태어나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여줬던 삼성맨 아저씨 중 40% 가량이 정든 회사를 떠났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너무나 가슴 아팠죠.

이렇게 각고의 노력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저와 삼성은 그 이후 엄청난 시련을 맞았습니다. 특히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인 2000년 이후부터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열두 살에서 열다섯 살까지였던 2005~2008년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였던 당시 이른바 ‘안기부 X파일’과 ‘삼성 특검’이 저를 괴롭혔죠. 결국 세간을 들썩이게 만든 삼성 특검 사건으로 아버지는 현역에서 물러나셨습니다. 아울러 제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 비서실(당시 전략기획실)도 사라졌죠.

저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기댈 곳 두 곳을 모두 잃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위기 속에서도 저는 꿋꿋이 버티면서 삼성 식구들과 함께 앞을 향해 묵묵히 정진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짧은 시간 안에 빨리 성장할 수 있었죠. 제 덩치(매출)는 태어날 때 29조원이었지만, 작년에는 380조원으로 13배가 커졌어요. 저와 함께 성장한 제품 가운데 세계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8개나 되구요.

덩치만 커진 것이 아니에요. 내실도 튼튼해져서 근육(세전이익)이 8000억원에서 39조1000억원으로 무려 49배나 늘어났죠.

이는 모두 내적으로 강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함께 고생한 식구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전 ‘12학번입니다.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그렇듯 저도 대학교 2학년을 마치는 올해가 지나면 군대에 가려고 합니다. 어른들은 늘 “남자는 모름지기 군대에 다녀와야 어른이 된다”고 하십니다. 그 말들처럼 올해가 지나면 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을 것 같네요.

“체질이 강해야 세계 최고가 된다”는 아버지의 큰 가르침 속에 지금까지 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버지의 가르침 속에서 배우고 느꼈던 점을 기반으로 홀로 서고자 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인생의 스승이신 아버지로부터 ‘청출어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말이죠.

◇ 이신경영 프로필

▲나이: 20세(1993년 6월 7일생)

▲출생지: 독일 프랑크푸르트

▲아버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성격: ‘내강외강(內剛外剛)’

▲좌우명: 인생은 늘 위기다. 항상 내실을 다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자(아버지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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