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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키운 '콘크리트 둔덕' 꼭 그렇게 지어야 했는지 보니

홍수현 기자I 2024.12.31 06:26:23

국내외 매뉴얼과 상이한 부분 있어
"활주로 인근 구조물, '부서지기 쉽게 설계'" 명시
국토부 "해외서도 콘크리트 사용 사례 있어" 반박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무안국제공항에 설치된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과 이를 지지하기 위해 지상으로 돌출된 형태로 만들어진 콘크리트 구조물(둔덕)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키웠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되는 가운데 구조물이 매뉴얼을 제대로 지킨 것이냐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30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콘크리트 재질 방위각 시설이 전날 제주항공 여객기와의 충돌 여파로 파손돼 있다. (사진=뉴스1)
31일 무안국제공항과 국토부에 따르면 여객기의 착륙을 돕는 역할을 하는 안테나인 로컬라이저와 콘크리트 둔덕은 공항 활주로 끝에서 250m가량 떨어진 비활주로에 설치됐다.

둔덕은 흙더미로 둘러싸인 두터운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이뤄졌으며 좌우 길이 58m, 높이는 4m 정도다. 이 구조물 위에 로컬라이저 안테나라는 비행기가 착륙할 때 중앙선에 맞추도록 신호를 보내는 장치를 설치했다.

당초 둔덕을 쌓은 이유는 활주로와 수평 높이를 맞추기 위한 걸로 보인다. 안테나 지지대 토대는 지표면과 같은 높이어야 하는데 무안 공항은 활주로 끝단이 지난 뒤 지면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내외적으로 공항 활주로 인근에 설치된 구조물은 “부서지기 쉽게” 설계하도록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 ICAO가 제작한 매뉴얼에는 특히 안테나는 경량 구조물이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항공기와 충돌할 경우 충격을 줄이려는 목적이다.

국토부가 고시한 공항안전운영기준에도 비슷한 내용이 눈에 띈다. 활주로 주변에 위치한 물체는 “부서지기 쉬운 구조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무안공항의 안테나 구조물은 관련 고시를 어겼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토부에 따르면 이 시설은 2005년 무안공항 건설 당시 국토부 산하기관인 서울지방항공청에서 설계를 맡았다.

다만 국토부는 “이 지침은 착륙대나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등의 내에 위치하는 시설물에만 적용된다”며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처럼 종단안전구역 외에 설치되는 장비나 장애물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으며 관련 국제 규정의 내용도 같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해외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공항과 스페인 테네리페 공항, 남아공 킴벌리 공항 등이 콘크리트를 쓴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외국 항공 전문가와 전직 비행사들은 유튜브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여객기가 이러한 구조물과 충돌해 인명 피해가 커졌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항공 전문가인 데이비드 리어마운트는 영국 스카이뉴스에 출연해 “승객들은 활주로 끝을 조금 벗어난 곳에 있던 견고한 구조물에 부딪혀 사망했는데, 원래라면 그런 단단한 구조물이 있으면 안 되는 위치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행기는 활주로를 미끄러지며 이탈했는데 이때까지도 기체 손상은 거의 없었다”며 “항공기가 둔덕에 부딪혀 불이 나면서 탑승자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리어마운트는 영국 공군에서 조종사이자 비행 강사로 근무했으며 영국 왕립 항공학회에서 최우수상을 두 차례 수상한 항공 문제 전문가다.

한편 ‘해당 시설이 사고 규모를 키웠는가’에 대한 조사를 설계를 했던 국토부가 직접 맡는다는 점에서 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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