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은 그동안 국회가 공전한 원흉 중 하나로 상임위 법안소위의 만장일치제를 지목했다. 소위에 속한 10여 명의 국회의원 중 한 명만 반대하더라도 법안처리를 할 수 없는 것을 놓고 “비정상적인 국회 관행”이라 표현했다. 이를 명분 삼아 ‘일하는 국회법’은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다. 하지만 만장일치제가 왜 국회의 관행이자 운영방침이었는지도 살펴보았는지는 의문이다.
법안소위는 상임위에 앞서 법안을 심사하는 기관이다. 국회법상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위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의결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만장일치가 기본 방침이다. 18∼20대 국회가 법률안 5만5876건을 처리하는 동안 법안소위에서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로 처리한 법안은 8건뿐이다.
상임위에 만장일치제가 도입된 것은 다수당이 소수당의 합의 없이 표결로 밀어붙일 수 없게 한다는 취지다. 법안소위가 다수결 원칙으로 운영된다면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을 비롯해 정의당 등 소수야당이 반대의견을 내더라도 다수당이 의석을 기반으로 밀어붙이는 게 가능해진다. 다수라 할지라도 소수의견을 듣고 숙려한 뒤 토론을 거쳐 상대를 설득하거나 의견을 반영해 법안을 처리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깔려있다.
민주당은 이미 21대 국회 원구성에서 17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차지 한데다 지난달 30일부터는 정부의 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독자적으로 심사했다. 추경안은 정부원안(35조3000억원)에서 하루 만에 3조1000억 여원이 증액돼 예산결산특위로 넘어갔다. 역대 최대 규모의 추경안을 두고 여당만으로 구성된 상임위가 1~2시간 만에 심사를 끝내는 진풍경이 나왔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정의당의 장혜영 의원도 졸속심사에 항의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민주당만 일하는 국회’는 곧 배제의 정치다. 집권여당이 법안처리부터 예산심사까지 혼자 처리할 수 있는 마당에 야당은 점점 더 배제되고 있다. 법안을 저지할 방법이 없는 야당에게 일하라는 건 반대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면서 “일하지 않는 정당은 자연도태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상임위 중심주의를 채택한 우리 국회에 토론과 숙의는 근본가치다. 숙의의 활성화에 초점에 맞춰져야 하는 ‘일하는 국회법’이 법안의 일방적 처리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의회정치는 머릿수로 하는 게 아니며 국회의원 한 명의 목소리도 헌법기관으로서 가치있다. 법안 통과는 사람이 하는 것인 만큼 법안 처리의 신속성보다는 충분한 숙의를 거쳐 소수야당의 의견을 수렴해 타협한다는 합의정신이 중요하다. 합의제 민주주의가 퇴색하고 승자가 독식하는 분위기가 고착화한다면 ‘일당독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