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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정치입문, 대선출마, 정계은퇴·복귀 등 중대 결정을 언제 어떤 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효과는 극과 극이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감각이 가장 뛰어난 인물은 누가 뭐래도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직관의 정치인’이었던 YS의 정치적 타이밍은 기가 막혔다. 마치 족집게 도사와도 같았다. 이는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논리의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던 점과는 묘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안철수, 혜성처럼 정치권 등장…지난 대선 이후 정치적 내리막길
가장 대표적인 게 YS의 단식이었다. 요즘에야 정치인의 단식은 조롱거리에 불과하고 별 효과도 없다. 5공 시절에는 달랐다. YS의 목숨을 건 단식은 단숨에 정국을 변화시키며 민주화의 기폭제가 됐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YS는 더 거침이 없었다. △하나회 숙청을 통한 쿠데타 가능성 차단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등 전광석화와 같은 개혁조치는 ‘정치적 타이밍의 정석’과도 같다. 정치적 감각 면에서만 본다면 YS는 그야말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정치인이었다.
YS와 달리 정치적 타이밍에서 늘 손해만 본 정치인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다. 손학규 대표가 지난 2006년 10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시절 ‘100일 민심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날에 북한의 1차 핵실험이 터졌다. 이후 10여년간 손 대표가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할 때면 나라 안팎으로 메가톤급 사안이 속출했다. 손 대표 뉴스는 완전히 묻혔다. 돌이켜보면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결정적 시기에 지나치게 좌고우면하는 손 대표의 정치적 스타일도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어떨까? 굳이 따지자면 지나치게 신중한 스타일이 마이너스로 작용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안철수 전 대표는 사실 지난 대선 패배 이후 정치적 내리막길만을 걸었다. 시작은 달랐다.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 2011년 하반기 그야말로 혜성처럼 정치권에 등장했다. 2002년 대선국면에서 월드컵 4강 신화를 바탕으로 대선후보로 수직상승했던 정몽준 후보 이상이었다. 정치입문과 동시에 대선주자로 뛰어올랐다. 국민적 지지는 그야말로 열광적이었다. 야권 단일화 문턱에서 스스로 포기했다. 이후 안철수 전 대표의 정치적 행보는 크고작은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 안철수 전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은 예전과는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하락했다. 강력했던 팬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를 향한 조롱과 비아냥은 일상이 됐다.
◇정치판 뒤흔든 안철수의 정계복귀…파괴력 놓고 엇갈리는 전망
안철수 전 대표가 연초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해외생활 1년 4개월 만이다. 4월 총선을 90여일 앞두고 정치적 보폭도 커지기 시작했다. 총선을 앞두고 유동적인 정치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다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엇갈린 전망이 흘러나온다. 유권자 지형이 보수·진보 양극단으로 나눠진 상황에서 ‘중도’를 강조해왔던 안철수 전 대표가 정치적 공간을 찾기 힘들다는 비관론이 적지 않다. 올드보이 정치인의 귀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20대 총선 당시 그가 보여줬던 정치적 돌파력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안철수 전 대표는 모두가 반신반의할 때 ‘녹색돌풍’이라는 성공신화를 만들어냈다. 민주당·한국당 계열 정당이 수십여년간 주도해온 양당정치의 균열을 가져온 혁명적 변화였다.
안철수 전 대표는 2012년 대선과 2017년 대선에서 연이어 실패했다. 남은 건 2022년 대선이다. 차기 대선으로 가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4월 총선에서 본인의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하는 게 필수적이다. 4월 총선의 프레임은 명확하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찬반이다. 관건은 이른바 ‘반(反)문재인’을 기치로 한 ‘중도·보수 대통합론’에 발을 담그느냐다. 이후 내부 권력투쟁을 거쳐 반(反)문재인 차기 주자로 우뚝 설 수 있느냐 여부다.
지난 2017년 5.9 대선 막판 안철수 전 대표는 ‘문재인 vs 안철수’ 일대일 구도가 만들어졌을 때 외연확장보다는 ‘자강론’을 고집했다. 결과는 패배였다. 정치에 가정이라는 건 없다. 만일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전 대표가 ‘반(反)문재인’을 내세워 다른 정치세력과 연대했다면 문재인 대통령 탄생은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른바 ‘조국사태’를 거치며 민주당·한국당 열성 지지자들의 목소리는 필요 이상으로 커졌다. 시중에는 “민주당도 싫고 한국당도 싫다”는 여론도 상당하다. 안철수 전 대표의 권토중래는 이러한 여론을 단일한 정치세력으로 묶어내는 게 전제돼야 한다.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차기 대선의 전초전인 4월 총선에서 완벽하게 부활하느냐 아니면 정치무대에서 은퇴하느냐는 전적으로 안철수 전 대표 본인의 역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