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막아라"…5G 통신장비 진입장벽 세우는 美

방성훈 기자I 2019.12.24 06:00:00

美통신장비 제조업체에 "오픈소스 5G 기술 개발하라"
화웨이 죽이기 위한 5G 기술 ''열린'' 표준화 시도
中 “너희 것도 안사” 반격…장외 샅바싸움 치열
런정페이 “美제재에도 내년 10% 성장” 자신

(사진=AFP)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이 중국 화웨이 견제를 위해 5G 통신 기술을 오픈소스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화웨이 의존도를 대폭 낮추고, 궁극적으로는 5G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미국 정부는 유럽·아시아 동맹국들을 상대로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지하라”며 옥죄기에 나선데 이어 미국 통신장비 제조업체들에게 “5G 오픈소스를 개발하라”며 압박하고 나섰다. 미국의 지속적인 견제에도 화웨이는 내년에 최소 10% 이상 매출 증가를 보일 것이라며 발전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美, 5G 기술 표준화 시도…화웨이 죽이기 연장선

2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최근 미국 통신장비 제조업체들에게 힘을 합쳐 오픈소스 기반의 5G 기술 개발에 협조할 것을 촉구했다. 중국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대체하기 위한 이른바 5G 오픈소스 프로젝트다.

현재는 한 번 화웨이 제품을 쓰면 유지·관리 등을 위해 지속해서 화웨이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5G 통신장비 기술을 모두에게 공개해 ‘표준화’가 이뤄지면 누구나 해당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이 각각 다르지만 모두 같은 방식이나 규격의 충전기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충전기 제조업체들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표준화된’ 기술을 쓸 수 있다. 전 세계 5G 통신장비 시장의 3분의 1을 장악한 화웨이 입지를 약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미국 국방부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기술 개발에 나서는 기업에게는 세제 혜택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협조하지 않는 기업에게는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다만 이같은 표준화 시도가 오러클이나 시스코 등 미국 통신장비 업체들에게는 잠재적 경쟁자들의 시장 진입을 허용,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지적했다. 미국 기업들이 프로젝트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는 이유다.

미국 국방부 연구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리사 포터는 “미국에선 시장이 승자를 결정한다. (오픈소스 5G 기술개발에) 참여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하지만 시장은 누가 이길 것인지 결정해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정부는 또 자국 기업들을 통해 대안을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삼성전자와 에릭슨, 노키아 등 동맹국 기업들 장비로 화웨이 부품을 대체하는 방안도 함께 모색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미국 통신장비 제조업체들이 경쟁력을 잃게 될 수 있음에도 표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이 화웨이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12년 화웨이 통신장비가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결론지었다. 백도어를 설치해 미국이나 동맹국들의 기밀을 훔치거나 통신 체계를 교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5G 패권을 빼앗길 경우 경제 주도권마저 중국에게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이후 미국 정부는 화웨이를 견제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왔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무역전쟁과 맞물려 노골적인 배척에 나섰다.

화웨이를 거래제한 기업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의 딸을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 등으로 캐나다에서 체포해 미국 법원에 기소했다.

유럽 및 아시아 동맹국들에겐 화웨이 5G 장비 사용 금지를 강요해 왔다. 이번 오픈소스 프로젝트 역시 ‘화웨이 죽이기’ 맥락에서 추진됐다.

◇中 “너희 것도 안사” 반격…장외 샅바싸움 치열

미국이 강공으로 나서고 있지만 중국의 반격도 거세다. 특히 장외 샅바 싸움이 치열하다.

미국과 ‘다섯 개의 눈(Five Eyes)’이라는 정보 수집·공유 안보 동맹을 맺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영국은 처음에는 미국 요구에 부응했다.

하지만 영국은 결국 제한적이나마 화웨이 장비 사용을 허용키로 했다. 호주는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지했다가 된서리를 맞고 있다. 화웨이는 “우리 제품을 쓰지 않으면 호주 내 일자리 1500개가 사라질 것”이라며 압박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자국 국민들이 중국에 억류되는 등 외교 갈등으로 번지자 최종 결정을 보류한 상태다.

미국은 유럽·아시아 동맹국들에게도 화웨이 장비 사용을 금지하라고 촉구했다. 상대국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관세부과 등 경제 제재를 지렛대로 삼겠다는 속내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중국의 구매력을 무시할 수 없는데다, 이미 되돌리기엔 화웨이 장비를 너무 많이 쓰고 있어서다. 또 이미 화웨이와 계약을 체결한 곳도 많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은 “중국 정부가 독일 차량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어떻겠는가”라는 한 마디에 5G 장비 입찰에서 화웨이를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

이외에도 프랑스가 화웨이의 5G 시장 참여를 반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중동 및 아프리카 국가들은 상당수가 이미 화웨이에 5G 설비를 발주한 상태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사진=AFP)


◇런정페이 “美제재에도 내년 10% 성장” 자신

아울러 미국이 하드웨어 부문에서 대안을 찾고 있다면 중국은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화웨이는 자체 운영체제(OS) ‘홍멍’으로 탈(脫)미국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화웨이 스마트폰이 잘 팔리는 시장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구글 안드로이드 없이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럼에도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이날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강력한 제재에도 발전 추세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화웨이는 살아남을 것이다. 내년에 우리가 아직 살아있는지 두고보라”며 2020년 10% 안팎의 매출 성장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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