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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정치학 개론

강한섭 기자I 2012.10.16 08:51:47
이미지, 스토리, 프레임, 그리고 예능이 대한민국, 2012년을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 안철수 신드롬이 벌써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이 현상은 잘생기고 능력있는 저명인사 안철수 교수를 영순위 차기 대통령 안철수로 변화시켰다. 그는 마술과도 같은 둔갑술로 서울시장도 실질적으로 자기가 지명하고 철옹성 같던 박근혜 대세론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게 만들었다.

안철수 바람에 대해 학식 있고 점잖은 정치학자와 평론가들이 일과성 이변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 위기의 시대에 영웅이 모든 것을 해줄 것을 기대하는 집단 환상이다’. 그러나 안철수의 인기는 해가 바뀌고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금년 초여름까지 계속 진행형이었다. 그때 안철수 교수가 지금 보면 대선 출마 예비선언문이었던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하고 TV 프로그램 [힐링 캠프]에 출연해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교양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새로 썼다. 그러자 점잖은 분들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감상문 같다’, ‘내용이 없다’. 보수층 논객들은 아예 치를 떨었다. ‘위선적인 말과 행동이 역겹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의 효과는 일시적이다’

그러나 안철수 교수는 대선이 정확히 석 달 남고, 추석 연휴 시작 열흘전인 9월 19일 오후 3시에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라는 슬로건을 비전으로 내걸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광장이 아니라 실내에서, 조직과 세력 대신에 모든 공중파와 종편 그리고 케이블 뉴스 채널의 카메라를 총동원하여 정치가의 웅변이 아니라 ‘순진한’ 정치 신인의 모습으로 마이크 좌우의 프롬프터를 번갈아 보면서 잔잔한 목소리로 출마 선언했다.

출마선언으로 마법이 일어났다. 40대 유권자의 28%가 안 후보 지지로 고무신을 바꿔 신으면서 정치지형도가 요동쳤다. 점잖은 분들은 이제 아예 아우성 쳤다. ‘구체적인 정책을 내 놔라‘, ’정당정치의 파괴자다‘. 그러나 예상은 조금 자신 없게 말했다. ’본격 검증이 시작되면 ...‘, ’추석 명절이 지나면...‘. 그래서 세금, 논문, 여자문제 그리고 언행불일치 까지 본격 검증이 합법과 불법(?)의 모든 방식을 동원해 펼쳐졌다. 그리고 공식 연휴에 개천절까지 휴가를 즐긴 행복한 사람들도 모두 귀경했다. 그래도 양자대결에서 안철수 승리라는 민심은 계속되고 있다.

점잖은 분들의 기우제는 계속되고 있다. ’선거일이 임박하면...‘. 인디언들이 기우제의 효과를 믿는 이유는 간단하다. 비가 올 때 까지 무한정 기우제를 드리는 것이다. 그렇다. 언젠가는 안철수 현상이 시들해질 것이며 마침내 소멸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점잖은 주류 정치학 교수, 평론가들이 왜 집단적인’예언의 자기실현‘ (self-fulfilling prophecy)의 미혹에 빠져 오답 행진을 이어왔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볼 때가 왔다.

안철수 현상은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사회과학의 근대적 개념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그러면 ’이미지가 콘텐츠를 지배하는 전도된 세상이 개탄스럽다‘는 우국지사적 비판과 ’구체적인 공약을 내놔라‘는 다그침이 반복되게 한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유권자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뇌는 후보자의 이미지, 스토리, 프레임에 가장 먼저 가장 강력하게 반응한다. 화려한 언어로 내건 공약에는 가장 나중에 희미하게 반응한다. 점잖은 분들은 현상을 설명할 개념으로서의 용어를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오답을 쓴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이미지, 스토리, 프레임, 플롯의 개념 즉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생물학에 기반을 둔 인지정치학으로 읽어야 한다. 필자는 앞으로 이 학문을 ‘엔터테인먼트 정치학’으로 부르고 싶다.

- 강한섭 (서울예술대학 교수, 영상커뮤니케이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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