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7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삼성전자 ‘더 퍼스트 룩 2018 뉴욕’ 행사장에서 처음 본 그의 모습은 이랬다. 검은 뿔테에 푸른 세미정장, 헤드셋 마이크로 한껏 멋을 부렸지만,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 단상에서 QLED TV 신제품을 소개하는 어색한 한국식 영어발음은 그를 더욱 토종 한국인으로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25일 별세한 고(故)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의 첫인상이었다. 당시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장(사장) 5개월 차였던 한 부회장은 막 뉴욕특파원 5개월 차에 접어들던 필자에게 와인 잔을 건네며 “한국에서 소주와 김치를 싸올 걸 후회한다”고까지 했으니, 더는 ‘토종 한국인’ 얘기를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그의 삼성맨다운 자세도 뇌리를 스친다. 당시 화이트아웃(폭설로 시야가 심하게 제한되는 날씨 상황) 현상까지 발생할 정도의 뉴욕엔 눈 폭풍이 불었지만, 한 부회장은 “삼성은 어떠한 악천후 속에서도 할 건 하는 조직”이라며 뼛속까지 삼성맨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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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후배들은 한 부회장의 빈자리는 크게 느끼고 어깨는 더욱 무거워져야 한다. 위기설이 불거진 올해 들어, 그는 VD를 넘어 미래 먹거리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데도 집중했었기 때문이다. 한 부회장은 최근 삼성전자 주총에서 “올해는 보다 유의미한 인수합병(M&A)을 추진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겠다” “첨단 휴머노이드 개발에 활용해 발 빠른 기술 검증과 고도화를 진행하겠다” 등 여러 청사진을 제시했었다.
한 부회장이 삼성전자 대표이사에 오른 2022년 필자는 전자팀장으로서 그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4년 전에 비해 홀쭉해진 한 부회장을 보며, 질문 대신 “건강 잘 챙기세요”라는 덕담을 건넸었다. 당시엔 ‘송곳 질문을 던질 걸’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니 나름 잘한 것 같다. 짧지만 강렬했던 그와의 두 번의 만남, 아무래도 평생 각인될 것 같다. 토종 한국인이자 삼성맨인 고 한종희 부회장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