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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검찰총장은 어떤 연유로 자신을 탄핵해달라고 말하게 된 걸까요? 이야기는 지난달 17일 국회 법사위 대검 국정감사장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날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감장에서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 검사의 비리 의혹을 제기합니다. 이정섭 차장검사는 ‘법인카드 유용’ ‘쌍방울(102280) 대북송금’ 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수사를 지휘하는 인물입니다.
“이 대표를 수사할 사람이 아니라 본인이 수사를 받아야 할 분”이라고 일갈한 김 의원은 이 차장검사가 딸을 명문 초등학교로 보내기 위해 서울 강남구 도곡동 거주지에서 오른쪽 아파트로 주민등록지를 옮기는 위장전입을 저질렀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익명의 제보를 인용해 이 차장검사가 선후배 검사들을 위해 처남이 운영하는 골프장을 저렴한 비용으로 예약해주고, 처남의 부탁으로 골프장 직원과 가사도우미의 범죄 기록을 대신 조회해주는 등 처가 관련 각종 민형사 분쟁을 해결해줬다고 밝힙니다.
갑작스러운 부하직원 비리 의혹 제기에 당황한 이원석 총장은 “인척 간 분쟁 과정에서 나온 주장이니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져보겠다”며 일단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후 이 차장검사는 위장전입 사실은 일부 인정하면서도 나머지 의혹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 차장검사를 즉각 대검찰청에 고발한 데 이어 지난 9일에는 이 차장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습니다. 탄핵안이 본회의에서 가결되면 6~8개월 후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있을 때까지 이 차장검사는 직무가 정지됩니다.
민주당은 불법을 저지른 검사에 대한 정당한 탄핵이라는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검찰 등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재명 대표를 수사하는 검찰을 압박하고, 총선이 가까워진 시점에 수사의 결론이 나는 것을 방해하려는 의도 아니냔 비판이 쇄도했습니다.
◇ 들끓는 검찰 조직…불만·불안 수습 나선 검찰총장
특히 검찰 내부는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이 차장검사 관련 의혹들은 아직 확인되지도 않았고 내부 징계사안이 될 수는 있어도 탄핵은 지나친 처사라는 것입니다. 한 현직 검찰 관계자는 “묵묵히 일하는 검사들까지 싸잡아 검찰 자체를 악의 집단처럼 몰아가려고 하는데 기분이 좋을리가 없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대검은 즉각 입장문을 내 “탄핵은 직무상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이 있는 경우에만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인정된다, 민주당의 탄핵은 수사와 재판을 방해하려는 정치적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고,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도 “의회 권력을 남용한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횡포”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차라리 날 탄핵하라”는 이원석 검찰총장의 호소는 탄핵의 부당성을 부각하는 동시에, 검찰 내부의 불만과 불안을 추스르는 메시지로 해석됩니다. 부하 직원들에게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우두머리인 내가 막을 테니 다들 본연의 할 일에 집중하라’고 당부하는 것입니다.
이 총장은 또 “이 차장검사의 직무가 정지되면 (이재명 대표 의혹)수사에 차질은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수사팀은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제대로 수사의 결론을 낼 것이라 굳게 믿는다”며 수사팀을 향한 격려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차장검사의 직무 정지가 이재명 대표 의혹 수사에 미미한 영향만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통상 차장검사는 수사를 지휘하고, 일선 수사는 거의 대부분 부장검사 선에서 이뤄진다”며 “차장 직무대행을 누가 맡느냐에 따라 수사에 급제동이 걸리거나 하는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는 “쌍방울, 법인카드 의혹은 이미 수사 초기 단계는 지났고 증거도 어느 정도 확보됐을 것”이라며 “수사 실무상의 문제보다는 수사팀이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는 것이 관건”이라고 짚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