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주 창작과비평 편집주간은 “문예와 정론을 겸하는 비판적 종합지가 200호까지 맞이한 사례는 드문 일”이라며 “그간 한국사회 전환을 위한 담론 발신의 장을 추구해왔다”고 말했다. 200호를 쌓아 올린 비결에 대해선 “비현실적인 이상에 자족하지 않고 그렇다고 현실을 추수하지도 않으면서 변혁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창비 담론의 핵심”이라고 했다.
◇100호 이상 발행한 국내 계간지 중 맏형 격
창작과비평은 국내 계간지의 ‘맏형’ 격이다. 현재 100호 이상 명맥을 잇고 있는 계간지는 손에 꼽힐 정도다. ‘역사비평’(142호), ‘문학과사회’(141호), ‘철학과현실’(136호), ‘황해문화’(119호) 등이다. 1970~80년대 한국 문학과 사회에 관한 담론을 주도해온 잡지들이다. 당시 한국 지식사회의 의제 제시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점차 잡지를 보는 사람이 줄면서 폐간하는 계간지들이 잇달으면서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계간지 창작과비평은 한때 지식인들과 청년들의 필독서로 통했다. 1980~90년대 캠퍼스에서 대학생들이 이 잡지를 안고 다니는 풍경은 흔했지만, 지금은 생경한 일이 됐다. 그럼에도 종이잡지의 인기가 떨어지는 환경 속에서도 창간 이후 발행부 1만부 이상(정기 구독자 수 5000여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창작과비평 측의 설명이다. 2017년부터는 웹 위주의 ‘매거진 창비’를 시작해 전자독자로의 전환, 유입도 늘고 있다.
이 편집주간은 ‘법고창신’( 法古創新)의 정신을 언급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의미로 창비가 지켜온 정신이다. 그는 “한글로는 ‘한결같되 날로 새롭게’라는 뜻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의 변화, 사람들의 감수성 변화 등에 맞춰 이상적인 것과 현실을 결합해 구현할 길을 찾겠다는 취지를 잇고 있다”고 말했다.
◇느림의 가치 믿어…대전환 구체화
정보와 이슈 소비가 빨라진 시대 속에서 창작과비평 역시 위기감을 느끼고 있지만 ‘느림의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다. “슬로우(slow) 매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믿는 황정아 편집부주간은 “찬찬히 들여다보는 속도감이 종이란 물성과 통하는 면이 있다”며 “이슈를 빠르게 쫓지는 못하지만 제대로 다루지 못해 가라앉은 부분을 잘 갈무리할 수 있다”고 했다.
정론의 다른 축인 문학의 역할론에도 힘을 싣는다. 황 부주간은 “‘대전환’이란 주제를 문학 고유의 방식으로 수행하려 한다. 문학은 구성원 모두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의 답을 구하는 공동영역”이라며 “현실 문제에 공감하면서 다음을 생각하는 ‘이행’의 문학을 지향할 것”이라고 전했다.
백지연 부주간은 “페미니즘, 소수자 문제 등의 중요한 흐름과 담론을 생동감 있게 담아내지 못했다. 다만 이런 주제들을 다각도로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려 했다”며 “이런 주제를 ‘대전환’과 연결해 구체화하는 게 숙제”라고 밝혔다.
◇200호 특집호 ‘25년 미래’ 고민 담다
창작과비평은 2015년 세대교체를 위해 백낙청 편집인이 물러나며 편집위원진을 대폭 개편했다. 창간 50주년이었던 2016년 ‘문학 중심성’과 ‘현장성’ 강화를 선언했다.
이번 200호는 다음 300호까지 25년의 미래를 고민한 내용들로 꾸려졌다. ‘새로운 25년을 향하여’라는 기획 아래 장애인권, 플랫폼노동, AI시대와 정치, 지역과 농업, 기후위기, 한국언론 등 8가지 의제를 중심으로 주요 사회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문학 분야에서는 ‘미래’를 주제로 시인 30인의 시와 단편소설 3편을 실었다. 단기적 시야에 매몰되지 않고, 한국사회를 대전환으로 이끌 방안을 고민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반영해 특집 인터뷰 ‘새로운 25년을 향하여’와 논단 ‘대전환의 한국사회,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등을 수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창비 측은 젊은 독자 확보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 개선도 준비 중이다. 웹매거진 창비를 연 단위가 아니라 10일 단위로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을 7월부터 판매한다. 이번 호에 실린 특집 인터뷰 4편은 유튜브 계정에서 차례로 공개할 계획이며, 6월14~18일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그간의 궤적을 톺아볼 수 있는 전시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