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책 미흡한 여가부.. 존폐론 언제까지

김정우 기자I 2020.12.24 00:05:02

위안부 모독한 유니클로 가족친화기업 인증 논란
여가부 역할론 비판 지속... 여성관련 예산도 감소
전문가 "여성 위한 기구로 거듭나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가 지난 17일 ‘일본군 위안부’ 모독 광고 의혹 등으로 논란을 빚은 유니클로를 가족 친화 기업으로 인증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우리 역사의 가장 아픈 부분 중 하나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광고 소재로 삼은 기업을 여성의 권익향상을 도모해야 할 여가부가 가족친화기업으로 인증했기 때문.

여가부의 이번 결정을 두고 일부 누리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불붙는 민심에 기름을 붓는 여성가족부를 폐지시켜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해당 청원은 지난 23일 기준 3만2932명의 동의를 얻고 있다.

위안부 모독기업이 가족친화인증기업?

가족친화인증 기업·기관으로 선정되면 정부나 지자체 주관의 사업자를 선정할 때 가산점의 혜택을 받는다. 출입국 심사에서도 우대를 받는 등 220개의 인센티브를 누릴 수 있다.

유니클로는 지난해 발생한 한·일 무역갈등 이후 불매운동의 중심에 있던 기업이다. 특히 불매운동 이후 ‘위안부’ 모독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한 제품 광고에서 90대 할머니가 “10대 때 복장은 어땠냐”는 질문에 “그렇게 옛날 일은 기억 못 한다(I can't remember that far back)”고 답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한국어 자막에는 이 문장이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로 의역돼 1939년 일제강점기 ‘위안부’ 관련 문제 제기를 조롱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것.

당시 유니클로는 “불편함을 느끼신 부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광고 송출을 중단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가족친화기업 인증제도는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은 후, 인증 기준을 넘고 법령 위반 사실이 없을 경우 인증을 수여한다”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는 인증 대상에서 제외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적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이겠다”며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통해 선정기준을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8월 유니클로 강남점에 내걸린 영업 종료 안내문. (사진=연합뉴스)


여성 위한 기구 맞나비판 이어져

여가부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1년 설립 이후 군 가산점 폐지, 셧다운제 등 논란이 나올 때마다 폐지론이 불거졌다. 지난 7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역차별적인 제도를 만들고 여성 인권 보호조차 못한다”며 폐지하라는 글이 올라와 나흘 만에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성제윤(24·남) 씨는 “여가부가 성 평등을 위한 기구로서 역할을 하는지 의문”이라며 “대부분 또래 남성들은 (여가부에) 부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여가부의 정책이 역차별이라는 남성 위주의 커뮤니티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의기억연대 사태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에 여가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민지(23·여) 씨는 “폐지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최근 (여가부 태도에) 실망한 것은 사실”이라며 “권력형 성범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인데 여성 정책 예산 비중 최저

이런 가운데 여가부의 2021년 예산안에 따르면 해마다 여성 예산의 비중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21년 여가부 정책분야별 예산안에 따르면 가족 예산이 691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청소년(2284억원), 권익증진(1228억원), 여성(972억원) 분야 순으로 예산이 책정됐다.

총예산에서 여성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10.7%에서 2021년 8.2%(예산안 기준)로 2.5%포인트 감소했다.

여성 관련 정책 추진이 미흡한 데에는 구조적인 원인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 대상 성범죄나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 경찰이나 검찰 등 사법기관의 협조 없이 여가부가 주도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서다.

이외에도 돌봄 문제, 여성 고용 문제 등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과도 업무가 중복되며 차별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9대 대선당시 바른정당 후보였던 유승민 전 의원은 “여가부에는 예산과 공무원도 얼마 주지 않아 실제 여성을 위해 한 일이 많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최성지 여가부 대변인은 지난 7월 정례브리핑을 통해 “여가부는 관련 사건(권력형 성범죄)이 발생했을 때 조사 권한이 없다”고 호소하며 “다른 기관과 협조를 강화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여가부 폐지론에 대해서는 “더 많은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 여성 정책 추진 미진해...폐지가 답은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학자는 “여가부에 대한 남성 커뮤니티와 여성 커뮤니티의 지적은 결이 다르다”면서 “기존 남성들의 비판 외에 여성들의 지적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가부의 역할을 고민할 수 있는 여성학 전문가가 장관을 역임한 전례가 없었던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정옥 전 여가부 장관은 말 실수로 곤혹을 겪다 최근 사실상 경질됐다.

지난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이 전 장관은 내년에 치르는 서울·부산시장 동시 보궐선거에 대해 "모든 국민이 성인지 감수성을 집단으로 학습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제1·2도시인 서울과 부산은 지자체장들의 성추행 관련 사안으로 보궐 선거를 치르게 됐다.

앞선 8월 3일에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에 대해 “수사 중인 사건의 죄명을 규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해 소극적인 태도라는 비판을 받았다.

권수현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는 “현재 여가부는 17개 부처 중 예산도 적고 주로 돌봄이나 육아 정책에만 치중돼있다”며 “여성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는 정책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조직법상 예산이나 권한을 강화하고 부처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며 “여성을 위한 유일한 대변 기구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폐지보다는 비판을 통해 발전토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스냅타임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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