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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파도가 일렁이는 해변에 여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머리를 다듬는 손길이 바쁜 여인들. 맞다. 곧 찬 바닷물에 몸을 던지고 가뿐 숨비소리를 낼 해녀들이다. 요즘 보는 그녀들과 다른 점이라면, 보기에도 안쓰러운 복장. 저 차림으로 거친 바닷속에서 잘 견뎌낼 순 있을지. 그 마음이 화가의 붓을 움직였던 건가. 부산 1세대 서양화가 임호(본명 임채완·1918∼1974)가 60년 전쯤 그린 ‘해변’(연도미상)이다.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작가는 일본에서 유학한 뒤 마산에서 교직생활을 했다. 한국전쟁 때는 종군기자로도 활약했다는데, 전쟁 직후 영남상고로 옮겨간 것을 계기로 부산에 정착하고 부산에서 화업을 이어갔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향토색 짙은 현실의 ‘부산’을 화폭에 새기기 시작했다.
검은 윤곽선 안에 담은 묵직하지만 감칠맛 나는 색은 작가의 장기. 그 무기로 민족정서 짙게 품고 사는 냄새 물씬 풍기는 ‘사람’ ‘풍경’을 잇달아 세상에 내놨다. ‘해변’은 100호 규모로도 시선을 끈다. 당시로선, 또 작가로서도 드문 작품이다.
11월 2일까지 부산 수영구 광남로172번길 미광화랑서 여는 ‘임호 회고전’에서 볼 수 있다. 20여점을 걸고 그간 저평가된 작가를 재조명한다. 캔버스에 오일. 98.5×163㎝. 유족 소장. 미광화랑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