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도덕을 외면하면 안되는 이유

김용운 기자I 2016.05.25 06:17:00

현대 정치평론 31편 통해
낙태·동성애 찬반논란 등
민주주의 사회 딜레마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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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마이클 샌델ㅣ414쪽ㅣ와이즈베리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2004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9·11테러 이후 애국심이 고취된 미국의 분위기를 감안하더라도 부시의 재선은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충격이었다. 부시는 잦은 말실수 등으로 구설에 올랐고 9·11테러도 따지고 보면 부시가 막지 못한 참사였던 것이다. 출구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니 유권자는 당시 미국의 현안보다 ‘도덕적 가치’에 기준을 두고 투표권을 행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낙태와 동성결혼 허용 등에 대한 공화당의 보수적 입장이 부시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국내서 ‘정의’라는 고유명사로 통한다.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가 100만부 넘게 팔리며 한국사회에 정의 열풍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여러 딜레마적인 상황을 놓고 어떤 것이 정의인지를 되물으며 정치적인 영역에서 ‘옳고 그름’의 문제를 심도 있게 짚었다. 이후 샌델의 저작은 국내서 해외의 다른 어떤 저자의 책보다 주목받게 됐다.

‘좋은 삶을 향한 공공철학 논쟁’이란 부제가 붙은 이번 책의 원제는 ‘공공철학’(Public Philosophy)이다. ‘왜 도덕인가’란 제목으로 나왔던 책을 공공철학이란 원제에 맞게 새롭게 번역하고 샌델의 추가 원고를 실었다. 샌델은 31편의 정치평론을 통해 개인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우선시하고 특정한 도덕관념을 강제하지 않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빚어지는 딜레마에 대해 세세하게 풀어낸다. 가령 낙태의 경우 개인의 선택일 수 있지만 생명의 살인이란 도덕적 문제와는 상충한다. 정치는 이에 법으로 개입하려 한다. 또한 국가는 개인의 도박을 법으로 규제하면서도 복권사업을 통해 세금을 거둬들인다.

이같이 정치와 도덕 사이에 놓인 딜레마를 관통하는 질문은 ‘다중적인 정체성과 복잡한 자아가 특징인 다원주의 시대에 민주사회는 어떤 공동체를 희망할 수 있는가’다. 이에 대해 샌델은 여전히 명확한 해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서로 가진 의견을 적극 피력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결국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확대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책 말미에 붙인 고등학교 시절 레이건 대통령을 만났을 때의 일화 등 샌델의 개인사를 엿보는 재미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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