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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객 취향저격 '연트럴파크'…임대료 폭등 '속수무책'

김성훈 기자I 2016.05.20 05:30:00

박원순式 재생사업 1번지 연남동…공원 개방 1년 만에 대세상권 ''우뚝''
상가 임대료 작년보다 25~30%↑…상인들 사업 접거나 음식값 올려
서울시, 뒷북 상생대책 내놨지만 법적 구속력 없어 실효성 회의적

△경의선 기찻길이 공원으로 조성된 서울 연남동 일대에 젊은이들이 몰려들면서 주변 상권이 활기를 띠고 있다. 경의선 숲길 공원을 찾은 인파가 거리를 걷고 있다.
[글·사진=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지난 14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 내리니 연인이나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저녁이 되자 ‘홍대 약속장소 1번지’로 꼽히는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 버금갈 정도로 인파가 북적였다. 이곳을 시작으로 경의중앙선 가좌역까지 이어지는 공원 길 주변으로 20~30대를 고객으로 한 커피숍과 식당, 생맥주집이 늘어섰다. 서울 강북권의 대세 상권으로 떠오르며 이른바 ‘연트럴파크’로 불리는 ‘경의선 숲길 공원’에 들어선 첫 모습이다.

낡은 기찻길과 기사식당, 화교거리로 유명하던 연남동이 서울에서 손꼽히는 상권으로 떠올랐다. 과부하에 걸린 홍대 상권을 떠난 젊은 예술가들이 노후 주택가에 속속 공방을 차리면서 입소문을 타더니 지난해 6월 완공된 경의선 숲길로 쾌적함이 더해지자 방문객이 급증한 영향이다. 그러나 상권 임대료가 1년 새 최고 30%나 뛰면서 머지않아 대기업에 상권을 빼앗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경의선숲길 공원 나들이객 발걸음

연남동은 ‘박원순식 재생사업 1번지’로 꼽힌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뉴타운사업의 대안으로 지정한 ‘휴먼타운’ 시범사업지를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어받아 ‘주거환경관리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첫발을 내디뎠다. 전면 철거 대신 골목길과 저층 주택을 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사업비 약 54억원을 들여 전선과 전봇대를 지하에 묻고 도로를 새로 깔았다.

경의선 숲길 공원은 연남동 주거환경관리사업에 방점을 찍었다. 경의선 지하화로 폐철로가 된 용산문화센터~마포구 가좌역 철도부지(6.3㎞)를 선형(線形)공원으로 조성해 지난해 6월 1.26㎞ 길이의 연남동 구간을 시민에 개방했다. 마포구 노고산동에 사는 이서영(여·27)씨는 “걸을 수 있는 공원이 생기고 주변에 카페와 식당까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밝아져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의 발걸음도 눈에 띄게 늘었다. 공항철도 개통으로 인천국제공항과 약 45분 만에 연결되면서 외국인의 방문이 늘었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업소의 설명이다. 홍콩에서 왔다는 제이미 왕(여·22)씨는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묶고 있는데 이런 곳이 있을 줄 몰랐다”며 “고국으로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료 뜀박질…권리금까지 생겨나

평온하던 마을에 임대료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경의선 숲길 주변 상가를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 일대 임대료가 뜀박질을 시작해서다. 이 일대 중개업계에 따르면 연남동의 상가 임대료는 1년 새 25~30%가량 올랐다. 실제로 경의선 숲길 주변에 있는 전용 23.1㎡짜리 상가는 지난달 권리금 1억원에 월 임대료 200만원에 계약을 마쳤다. 연남동 D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지난해 공원 개통 전까지만 해도 월 임대료가 160만원이었는데 1년 만에 40만원이 올랐다”며 “이전에는 없던 권리금까지 생겨나면서 상인들의 부담이 한층 커졌다”고 말했다.

버거워진 임대료에 음식값도 계속 오르고 있다. 연남동에서 생맥주집을 운영하는 권모(46)씨는 “얼마 전 주인이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해 어쩔 수 없이 음식 가격을 소폭 올렸다”며 “임대료가 이렇게 계속 오르면 결국 대기업 상권에 자리를 빼앗길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 했다. B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이 월 임대료가 계속 오르니 음식이나 커피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 때문에 몇 달 만에 사업을 접고 떠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봤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치솟는 상가 임대료에 주민이 동네를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현상을 막기 위해 지난해 말 건물주와 임차인과 상생협약을 맺고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는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을 내놨다. 노후 상가 건물주에게 리모델링 비용을 최대 3000만원까지 지원하고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지 않고 임대기간을 보장하는 ‘장기안심상가’도 운영하기로 했다. 지난 12일에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10년간의 빅 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서울 전역의 관련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정책지도 개발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의 대책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보여주기식 정책에 머물 것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시가 건물주에게 리모델링 비용을 최대 3000만원까지 지원해 임대료 상승을 막겠다고 나섰지만 임차인이 원상복구하고 나가는 게 관례인 상가 임대차시장에서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주거환경관리사업이나 도시재생을 추진하는 단계에서부터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을 마련하는 등 구체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 경의선 숲길 주변에 있는 상가 임대료는 1년새 25~30% 가량 올랐다. 실제로 전용 23.1㎡짜리 상가는 지난달 권리금 1억원에 월 임대료 200만원에 계약을 마쳤다. 연남동 경의선 숲길 주변 상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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