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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IBM이 이처럼 거대한 사업 포트폴리오 변경이라는 대(大)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하지만, 악화되는 실적과 떨어지는 주가를 무한정 기다려줄 주주들은 많지 않다. 특히 미국처럼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렇다보니 벌써 취임 4년차에 접어들게 되는 버지니아 지니 로메티 IBM 최고경영자(CEO)의 부담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자사주 매입 등 주주 이익 환원을 줄여 신규사업 투자를 늘리고 직원수를 더 줄여 나가는 로메티표 긴축정책이 본격화되고 있다.
◇ 주가 떠받치기에 쓸 돈 없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겸 CEO가 사랑하는 기업인 IBM은 역설적으로 버핏에게 가장 큰 손실을 안겨주고 있다. 버핏 회장은 지난해 9월30일 기준으로 IBM 주식을 무려 7048만주 보유하고 있다. 지난주 4분기 실적 발표 이후 IBM 주가는 하루만에 3.6%나 떨어져 버핏 회장에게 3억9700만달러(약 4300억원)라는 막대한 손실을 안겼다. 그는 앞서 지난해 10월말까지 이미 40억달러(약 4조3300억원)에 가까운 평가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이처럼 주주들이 떠안는 엄청난 손실을 만회해주기 위해 IBM은 그동안 현금이 생기는대로 자사주를 사서 주가를 떠받쳐왔다. 그러나 이제 그럴 돈도 부족하기 때문에 이 돈을 차라리 신사업에 투자하겠다며 전략을 바꿨다.
마틴 슈로터 IBM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지난주 실적 발표후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자사주 매입으로 63억달러(6조8300억원)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자사주 매입에 쏟아부은 돈 137억달러에 비하면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다. 자사주 매입 규모는 11년래 가장 적은 수준이다.
자사주 매입은 유통 주식을 감소시킴으로써 주당순이익을 높이는데 유용했지만, 보유한 현금을 신사업 등에 대한 투자로 쓰지 않고 주주들에게 환원하는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컸다. 슈로터 CFO는 “IBM는 사업 재투자와 주주들의 이익 향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그 중 자사주 매입을 택했지만, 이는 결국 잘못된 선택이었던 전략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토로했다.
실제 IBM은 지난 2004년 이후 10년간 100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였다. 이는 전체 시가총액 가운데 거의 3분의 2 수준이었다. 그러나 투자 전문지인 시킹알파(seekingalpha)의 분석에 따르면 자사주를 취득하지 않았을 경우 현재 IBM 추정 주가는 192.70달러인 반면 실제 주가는 187.57달러로, 자사주 취득이 오히려 회사 가치가 마이너스(-)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 대규모 비용절감설(說) `솔솔`
IBM이 이처럼 이익 전망치를 낮추는 동시에 새로운 사업 투자를 늘리고 주주 이익 환원을 줄이겠다고 나서자 자연스럽게 대대적인 비용 절감 계획이 수반될 것이라는 근거있는 루머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IBM은 이미 수익성 개선을 위해 상대적으로 마진이 낮은 사업들을 줄줄이 처분하고있다. IBM은 저마진의 기업용 서버사업을 중국 레노보그룹에 팔았고, 반도체부문도 웃돈을 주면서 글로벌파운드리즈에 넘긴 바 있다.
지난해 여름 `IBM의 쇠망`(The Decline and Fall of IBM: End of an American Icon?)이라는 책을 써낸 실리콘밸리 저널리스트인 로버트 X. 클린젤리는 지난 22일(현지시간) IBM이 전체 직원수인 43만명 가운데 무려 26%에 이르는 11만8000명을 해고하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감원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번 해고가 다음주중 발표돼 2월말까지 순차적으로 실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IBM은 지난 1993년에 창사 이래 최대인 6만명을 해고한 바 있다.
지난주 슈로터 CFO도 “당장 지난해와 같은 규모의 구조조정에 나서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올 한 해에는 대규모 인력 감축이 가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그는 “기업현장에서도 비용 절감을 통해 밸런스를 맞추려고 하고 있다”고 강조했었다.
IBM은 새해 들어 첫 감원에도 이미 나섰다. 지난주 호주법인에서 400명의 직원을 줄이기로 했다. 이와 관련, IBM 호주법인 대변인은 “전세계적으로 IBM 내부에 업무가 없는 인력이 1만5000명에 이르고 있으며, 이는 클라우드와 데이터 분석 등 새롭게 성장하는 사업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수의 거의 절반에 이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