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담론이 과학? 복권이야!"

오현주 기자I 2015.01.14 07:37:39

세계 석학 22인 생각을 뒤집다
인간, 누구나 상황 뒤집어 '합리화'
무의식·기계적 직관적인 사고 대부분
이성적 잣대로 들이댈 수 없어
미래 향한 독특한 '생각' 끌어내
……………………………………
생각의 해부
대니얼 카너먼 외|524쪽|와이즈베리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한 남자가 실연했다. 당장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워한다. 먹는 것, 마시는 것도 마다하고 잠도 안 잔다. 주위에선 저러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고 걱정이다. 그런데 그가 살아났다. 그것도 예상보다 빨리. 다들 그가 오래 불행할 거라 예측했지만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원상태로 돌아갔다.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이 작용한 건가.

답은 ‘영향력 편향’이다. 이른바 정서예측의 오류라는 것. 인간에겐 사건을 보는 관점을 자신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는 놀라운 재주가 있다는 건데. 쉬운 말로 ‘합리화’다. 실연한 그 남자가 살아난 건 ‘그 여자와는 맞지 않았다’ 따위로 생각을 몰아간 덕분이다. 그러곤 이내 그 판단이 합리적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눈여겨 볼 건 그 결론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생각’이 중요하다. 생각이 관점을 바꾸고, 그 결과로 정서적 반응까지 갈아치울 수 있다.

그 ‘생각’ 하나 더 볼까. 불경기면 불경기일수록 떠오르는 산업이 있다. 자기계발이다. 세상이 내 편이 아닌 게 결국 자기계발에 뒤처지는 탓이라 여기게 만드는 그것. 어쨌든 이 지점에서 문득 궁금해지는 한 가지가 있다. 자기계발산업에서 쏟아내는 담론들이 정말 과학적일까.

답부터 말하자면 ‘아니다’다. 왜냐고? 자기계발은 ‘복권’이라서다. 서적이든 서비스든 자기계발과 관련된 구입을 할 땐 희망을 같이 사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은 과학적으로 증명해낼 수 없는 희망으로 빵빵하게 포장돼 있다. 그 터질 듯한 외형이 복권으로, 자기계발로 사람을 몰아간다. 그래서 이 산업엔 18개월 법칙이란 게 있단다. 자기계발 상품을 구매했던 사람은 18개월 전에도 비슷한 구매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법칙.

누군가의 뇌구조를 그대로 해체한 듯한 이 분석들은 세계적인 석학 22명의 뇌구조다. 행동경제학, 인지과학, 심리철학, 뇌과학 등에서 동시대에 가장 뚜렷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이들이 나서서 ‘생각’의 껍질을 벗겨냈다. 여기엔 ‘전망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 ‘블랙 스완’으로 잘 알려진 나심 탈레브, 뇌과학계에서 마르코 폴로란 별칭으로 불리는 빌리야누르 라마찬드란 등도 가세했다. 목적은 생각을 헤집은 데만 있지 않다. 궁극적인 지향은 미래, ‘생각’이 다시 찍을 청사진에 뒀다.

▲생각, 유리한 방향으로 튼다?

“원래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다. 좋고 나쁜 걸 결정하는 건 생각.” 셰익스피어의 판단은 옳았다. 인간에게 이만한 방어기제가 없기 때문이다.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낙담이 길어질 거라 지레짐작하는 이유는 자신이 방어기제를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는 걸 몰라서다. 심리적 면역체계를 향한 이 같은 무한신뢰는 대니엘 길버트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보내고 있다. 키워드는 정서예측. 수요-공급이란 그나마 똑떨어지는 영역인 ‘경제적 의사결정’조차 그 본질은 정서예측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엔 합리화, 앞서 살핀 ‘실연한 남자’ 같은 정서예측의 오류가 따른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을 트는 거다.

이런 식이다.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경제행위의 장밋빛 그림을 늘 그려댄다. 하나만 더 소비하면 정말 행복해질 거라고. 그런데 대중이 그 치밀한 세뇌작업을 모를까. 아니다. 안다는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짱 거짓말!”이란 말은 하지 않는단다. 대신 ‘뭘 하나 사면 정말 행복해질 듯’으로 무마한다는 얘기다.

▲어림셈법이 확률보다 똑똑한 이유

독일 심리학자 게르트 기거랜처의 관심은 좀 독특하다. ‘인간이 어떻게 확신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가’다. 답은 확률. 그런데 풀어가는 방법이 특이하다. “야구나 크리켓 혹은 축구에서 선수들이 어떻게 공을 받는지 아는가”를 묻는다. 그러곤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이 공의 궤적을 예측하기 위해 복잡한 미분방정식을 계산할까. 공이 높이 올라가면 그냥 달리는 거다.” 바로 어림셉법이다. 단순히 공과 눈 사이의 각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달리는 속도만 조절한다는 말이다.

확률과는 다르지만 무차별적인 통계의 한계를 부르짖은 이는 탈레브다. 그의 ‘블랙 스완’은 그렇게 나왔다. 가능성이 낮고 예측하기 힘들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에 빠지는 사건은 늘 있어왔다는 얘기다. 그 한 예가 서브프라임 위기. 통계에 매몰된 돌팔이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의원성 질환’(의사가 환자에 병을 옮기는 현상)과 다를 게 없단다.

▲내일을 좌우할 ‘생각’은?

물론 모두 다르다. 하지만 22명 석학의 입을 모아보면 ‘남 다른 생각’이 튀어 나온다. 인간 합리성에 대한 해석이 그 하나다. 맹신하지는 말자는 거다. 불확실한 세계에선 흥미롭지만 시급한 문제를 최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아니란 말이다. 오늘을 지배하는 게 합리성과 불합리성, 두 극단이라지만 솔직히 양쪽 다 인간 추론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단 뜻이다. 사실 인간의 생각이란 건 그리 이성적이지 않다. 무의식적·기계적으로 진행하는 직관적인 사고가 대부분이다. 이를 증명하는 데 공을 들인 이는 카너먼. 결국 시간·노력을 들여 단계적이고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정돈된 사고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걸 밝혀냈다.

과학의 힘을 믿는 이들 석학들은 되레 인간 경험을 뇌작용만으로 설명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입장이다. 결국 세상은 뇌 자체의 절대 힘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모두들 말버릇처럼 입에 올렸던 지식융합·통섭의 면모를 제대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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