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대책반장 SD, 신자유주의 종말을 선언하다

김재은 기자I 2013.01.02 08:39:52

신년 인터뷰, 금융의 길을 묻다
"신자유주의 반성·개혁 더 크게 나타날 것"
"새 패러다임에서 정부와 시장의 균형 필요"
"금융은 자금중개 기능 뿐 아니라 새 성장산업의 역할 해야"

[이데일리 권욱 기자] 영원한 대책반장 김석동. 그는 앞으로 정부와 시장의 새로운 균형을 찾고 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데일리 김재은 송이라 기자] 시장원리와 양적 성장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성장과 함께 30년간 금융정책을 진두지휘했던 그다. 금융실명제, 외환위기 등 굵직한 이벤트의 최일선에서 정부와 금융기관, 대내외의 하모니를 만들어냈던 그가 ‘자본주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들고 나왔다. 지난해 12월 26일 금융위원회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고한다. 새로운 자본주의 패러다임에서 정부와 시장의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 한다. 기존 정책수단과 운용방식의 유효성도 깊이 있게 검토해야 할 시기다.”

‘영원한 대책반장’ 수식어가 맞춤옷처럼 잘 어울리는 김석동 금융위원장(60)은 이름보다 ‘SD’로 통한다. 통상 정치인들에게 많이 붙이는 영어 이름 약자. 수십 년간 우리 경제가 맞이한 위기의 파도를 넘으며 자연스레 생긴 별명이지 싶다.

“지난 40년간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로 운영되며 절대빈곤 탈피, 자유시장경제 확산 등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높은 성장에 가려져 있던 잦은 경제위기의 반복, 경제양극화의 구조적 문제점이 드러났다.” 영국, 미국 등 주요국에서 벌어진 아큐파이(Occupy·점령하라) 시위가 계층 간 갈등 심화, 사회시스템 안정 악화의 단적인 예다. 정부와 시장의 새로운 균형과 역할정립이 필요하며 같은 맥락에서 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석동 위원장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과 개혁의 움직임이 더 크게 나타나며 조만간 변곡점을 맞을 것”이라며 “새로운 자본주의하에서는 경제시스템 안정과 질적 성장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십 년간 글로벌 경제를 주도한 신자유주의의 쇠락에도 금융시장 안정과 금융산업 건전성을 지키는 일은 여전히 금융정책의 최선의 목표다.

“금융부문에서 시스템 리스크를 없애는 게 먼저다. 금융시장의 안정과 금융산업 건전성을 지켜야 한다. 특히 외부로부터의 영향이 금융시장, 산업에 악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상당한 경계가 필요하다. 두 번째로는 금융이 본연의 기능인 실물경제를 얼마나 잘 지원하느냐 하는 것이다. 자금중개 기능뿐 아니라 새로운 성장산업의 역할을 해야 한다.” 여기에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 금융기관들의 사회적 책임,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가 더해진다. 이는 신자유주의와 함께 고도로 성장한 ‘탐욕’으로 대치된 금융기관들에 요구하는 마땅한 권리로도 여겨진다.

그의 고민은 ‘새로운 패러다임 등장과 정부, 금융기관의 역할 재정립’에 그치지 않는다. 유럽 재정위기가 구조상 시스템적 문제기 때문에 위기가 수십 년을 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유럽이 EU 공동체로 단일체제를 도입한 것은 경제적 선택이 아닌 다분히 ‘정치적’인 선택이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유럽 재정위기에 신속하고 과감한 조치가 필요했지만 상당히 지연됐다. 이는 유럽인들이 현 시스템을 유지해달라는 확고한 생각 때문이다. 유로체제는 경제적 번영보다는 ‘전쟁 없는 유럽’을 만드는 체제 안정의 수요 속에 탄생한 것이다.”

그는 미국 경제가 서서히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지만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고, 일본, 중국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결국 글로벌 경제가 다 좋지 않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에 미치는 악영향도 클 수밖에 없다는 것.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많은 기업이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이런 때일수록 금융이 경제 혈맥으로 자금 공급 역할을 충실히 해 실물경제 성장을 도와야 한다. 다만 일부 도태되는 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그는 이런 문제 인식에서 출발해 최근 연구원들까지 투입해 회사채 시장 전반을 살펴보고 있다. “원활한 자금공급과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당연히 궤를 같이한다. 1997년 대기업 계열사 30곳 중 14곳이 무너졌다. 예전처럼 무리하게 끌고 가다가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사례는 앞으로 없을 것이다. 외환위기 경험을 통해 시장에서 상당히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그는 되려 상시 구조조정이 지나치게 잘 이뤄져 너무 많이 구조조정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시장의 양극화, 자금조달의 양극화를 없애기 위해 회사채시장을 보고 있다. A급 회사채 중 사업성 등 전망과 관련해 채권발행이 어려운 기업들이 있다. 적절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다.” 금융시장은 여건이 급변하는 만큼 시장여건에 맞게 적절한 보완책을 만들 계획이며, 예전에 썼던 대책들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마주 앉은 김석동 위원장은 얘기하는 내내 자신에 차 있었고, 적어도 최근 2년간 위기의 파고를 잘 넘어왔다는 안도감도 한편에선 읽혔다. 그는 여기까지라고 했다. 누군가 그랬다. ‘관료주의’를 경계해야 하지만, 행정고시 제도는 유능한 인재들을 관료로 뽑아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제도이기도 하다고…. 그들은 애국심과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 밤낮없이 일하며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간다고 말이다. 열정을 가진 훌륭한 관료들을 만날수록 자꾸 고개가 끄덕여진다.

30년간 신념으로 일했던 김석동 위원장. 겨울에도 오장동 냉면집을 찾고, 매주 최신 영화관 데이트를 즐기는 소박하고 인간적인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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