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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 적용 어려워”…7개 부처 규제샌드박스 컨트롤타워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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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기자I 2025.05.28 05:29:16

이원우 서울대 공익산업법센터장
한국형 공익규제의 길을 말하다
KT 민영화 실무부터 규제샌드박스 설계까지
‘법과 제도의 유연한 진화’ 제안
''규제개혁 통합법'' 필요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이원우 서울대학교 공익산업법센터장(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국내 공익산업 규제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역량을 지닌 학자다. 그는 “공익 규제는 정해진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발전과 시장 구조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재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현재의 규제샌드박스는 복합 기술이나 융합 서비스에 대한 적용에 한계가 있다”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전담 컨트롤타워의 구축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1997년 겨울,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IMF 외환위기 속에서 김대중 정부의 한국통신(KT) 민영화 실무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공익산업 규제 연구의 길에 들어섰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통신·환경 등 공익성과 산업성이 충돌하는 영역에 대한 제도적 고민을 시작했고, 2006년 서울대에 ‘공익산업법센터’를 설립해 관련 법제 연구를 본격화했다.

200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규제샌드박스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초기 법안 설계에 기여한 인물로, 2019년 제도화 이후 ‘규제샌드박스의 아버지’로 불리며 법·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왔다.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등 주요 후보들이 일제히 ‘규제개혁 기구 신설’과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가운데 이데일리는 국내 규제 정책의 방향을 가장 깊이 있게 설계해온 이원우 교수를 만나 그 해법과 비전을 들어봤다.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이원우 서울대 공익산업법센터장
KT 민영화 실무부터 공익산업법센터 설립, 규제샌드박스 제안까지

-공익산업법센터는 어떤 곳인가요? 공익산업 규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05년 가을부터 준비해 2006년 5월 국제학술대회를 열며 센터를 출범시켰습니다. 제 박사 논문 주제가 민영화였고, IMF 직후 귀국하자마자 김대중 정부의 한국통신(KT) 민영화 실무에 참여했죠. 국영 기업일 때는 정부가 직접 의사결정을 하니 규제가 필요 없지만, 민간에 넘기면 공익을 위한 규제가 필요해집니다. 당시 KT의 업무를 기업적 활동과 공적 임무로 나누어 정리하고, 민영화 이후에도 공공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전기통신사업법 체계를 설계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 경험이 공익산업법센터 설립에 영향을 줬나요?

“네. 우리 실정에 맞는 선진적인 규제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KT를 민영화하면서 통신시장에 이용자보호와 공정경쟁질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규제를 설계했는데, 초기에 반대도 많았고 개선할 점도 많았지만, 크게 보면 우리나라 통신시장, 나아가 정보통신인프라의 발전에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공익산업 규제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시작된 거군요. 하지만 공익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강한 규제가 답은 아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동안 역대 정부들이 규제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워 왔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과잉 규제나 인센티브와 어긋나는 규제가 많습니다.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성공 경험이 강하게 남아 있어 규제 문화를 바꾸기 어렵고, 정치적 판단이나 사업자에 의한 규제 포획도 존재합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문구가 있는데, ‘창의와 혁신이라는 아이는 자유라는 요람에서 자라난다.’ 공익산업법센터는 창의와 혁신이 가능하도록 자유는 보장하면서도 공익은 지킬 수 있는 규제 체계를 연구하고자 합니다.”

-공익산업의 범주는 어떻게 정해지며,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나요?

“공익산업의 개념징표를 흔히 ‘공익관련성’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공익관련성이 있다고 모두 규제가 필요한 공익산업은 아닙니다. 소금도 필수적인 재화이고. 과거에는 전매사업으로 국가가 통제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규제가 불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시장에서 충분히 공급돼서 희소성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지요. 통신도 2000년대 초 민영화 초기에는 강한 규제가 필요했지만, 기술 발전과 시장 구조 변화로 규제 필요성이 줄었습니다. 규제는 시장 메카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필요합니다. 따라서 독점적 지위의 남용이 존재하는지 여부가 결정적 기준이 됩니다. 시대 변화에 따라 규제 대상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또 달라져야 합니다. 디지털 심화와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시대에 시장구조의 변화를 간파하고 이에 따라 규제정책 전반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디지털 심화 시대의 시장구조변화를 고려할 때 가장 먼저 재검토되어야 할 규제정책은 어떤 것일까요?

“디지털 심화 시대의 특징은 ‘공간개념의 변화’와 ‘주권국가의 통제권 상실’입니다. 인간이나 사회의 행위가 물리적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무한한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는데, 이러한 공간개념의 변화는 물리적 공간을 전제로 만들어진 지배력이나 경쟁의 관념에 변화를 야기합니다. 독점이나 지배력남용을 전제로 설계된 규제의 정당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디지털화로 인해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시장은 세계화되었지만, 이를 통제할 공권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제협력이 긴요하지만 현실적 제약이 너무 커서 가시적인 성과는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규제집행력의 한계에 따른 규제차별의 문제는 이미 현실적인 문제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각 국가의 언어, 문화, 역사, 제도 등의 고유한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기초로 한 산업정책적 대응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이원우 서울대 공익산업법센터장
“규제는 유연해야 합니다”

-규제샌드박스에 관심을 두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2009년부터 ‘규제형평제도’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며 관련 법안을 만들고 논문도 발표했습니다. 당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법과 규제는 원칙적으로 중요하지만, 억울하거나 예외적인 사안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규제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고려해 유연하게 설계되어야 합니다.

1995년, 제 스승인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롤프 슈토버 교수님께서 한국공법학회에 오셔서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재량권이 박탈되면서 법이 지나치게 치밀하고 복잡해졌고, 결과적으로 규제가 강화되는 부작용이 생겼다. 재량행사를 통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하셨죠. 그러나 당시 국내에선 이런 시각을 수용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이해하기도 어려워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규제샌드박스 제도는 본격적으로 시행된 게 2019년 아닌가요?

“맞습니다. 시행 초기에는 공무원 사회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개개 행정기관에게 법적용과정에서 예외를 인정할 재량을 부여하면 부패위험이 제기되기 때문에, 이러한 권한을 중앙의 독립위원회에 부여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예외적 적용을 허용하자는 법안이 제시되자 모든 행정기관이 자신들의 규제 권한이 약화된다는 우려 내지 위기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실무자들과 직접 토론하며 법안을 설계해서 정부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지만, 수차례 시도가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러다 2016년,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을 통해 ‘소기업 대상의 규제 유예 및 면제 제도’(‘소상공인 등에 대한 규제형평’)가 도입됐고, 이어 임시허가와 실증특례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이후 2018년부터 2019년 사이에 금융혁신법, 정보통신융합법, 산업융합촉진법 등이 잇따라 통과되면서 본격적인 규제샌드박스 체제가 갖춰지게 됐습니다. 특히 금융혁신법은 금융혁신사업을 지정하면서 기존 법률의 적용 배제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여 그 성격을 분명히 했고, 덕분에 국내 핀테크 산업의 혁신도 가능했습니다.”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이원우 서울대 공익산업법센터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샌드박스의 한계를 지적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 규제특례 적용기관의 다원화로 인한 문제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현재 규제샌드박스는 6개 부처, 8개 영역으로 나뉘어 운영되다 보니 제도 간 경계가 겹치고, 복합 기술이나 융합 서비스에는 적용이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특정 영역의 소규모 사업 중심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빅샷이 터지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또한, 현재 규제샌드박스는 지역, 기간, 규모 등에 의해 제한을 받습니다. 1~2년간 실증을 통해 문제가 없으면 허용하는 구조인데, 결국 금지된 행위를 허용하려면 법적 근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개별 법률마다 법령정비의무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스타트업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사업을 진행해야 하고, 자연히 제도 활용도는 떨어집니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법적 불확실성과 특례 종료 이후의 규제 복귀 가능성 때문에 참여를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조금전에 언급한 적용기관 다원화로 인한 문제와 결합되면 더욱 악화됩니다. 규제특례 이후 본래 소관부서에서 종래 규제틀에 따라 신사업을 규제하려고 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예컨대 ICT기술을 이용한 의료기기 사업이 정보통신융합법상 규제특례로 지정되더라도 기존 의료기기법이나 의료법에 따른 보건복지부의 규제정책에 변화가 없으면 해당 사업의 지속성에 어려움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원활하게 해소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입니까?

“규제샌드박스의 이념을 포함하면서 이를 확장시킨 ‘일반적 규제형평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입니다. 일반 규제형평제도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문제가 없는 규제이지만 특수한 상황에서는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형평에 반하는 불합리한 경우에, 일정한 요건 하에 규제를 유예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독일, 영국,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규제형평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우리도 부분적이지만 이른바 한국형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운영경험을 쌓아온 만큼, 이제 우리도 본격적으로 도입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규제개혁 통합법’을 제정해서 규제특례적용기관을 통합, 단일화하여야 합니다. 새로운 규제혁신기구를 설치할 수도 있고 기존의 규제개혁위원회나 권익위원회를 개편하여 기구를 통합할 수도 있습니다만, 혁신의 임팩트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들 규제관련 기구를 통합해서 대통령 직속 또는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가칭 ‘규제혁신위원회’를 설치하고 여기에 기존 규제관련 기관의 권한에 더하여 규제형평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위원회에서는 전문가와 이해관계자의 참여절차를 보장하여 갈등을 조정하고, 공무원의 적극 행정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구조로 운영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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