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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과잉' 구조개편 깃발 들었던 제주항공, 잇단 M&A 실패

이소현 기자I 2020.07.16 05:00:00

''규모의 경제'' 위해 아시아나에 이어 이스타까지 인수 도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돼 미래 투자·청사진 ‘속수무책’
갑작스런 CEO 교체..안팎으로 ‘동반부실’ 리스크 커져
기밀 깬 M&A ‘신뢰’ 잃어..이스타항공 일가 의혹도 부담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항공산업의 위기 극복과 공급과잉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선제 대응을 위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기로 했다.”

이스타항공과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당시 제주항공 대표이사였던 이석주 사장(현 AK홀딩스 대표)이 임직원에게 보낸 최고경영자(CEO) 레터(편지) 중 일부 내용이다. 이어 이 대표는 “국내 항공업계가 조만간 공급 재편을 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선제로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제주항공은 작년 12월18일 인수 발표를 한 뒤 이스타항공 실사 지연을 이유로 2차례 연기한 끝에 지난 3월 2일 SPA를 체결했다. 일본 불매운동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 여파로 이스타항공에 대한 인수에 대한 직원들의 우려가 컸지만, CEO가 직접 인수 의지를 밝히며, 미래 청사진과 비전을 제시했다. 직원을 안심시키는 것은 물론 시장관계자들의 불안도 불식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4개월 뒤 “제주항공의 새역사를 만들자”며 국내 항공산업의 구조개편의 선봉에 섰던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1위 제주항공의 도전은 ‘일장춘몽’으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에 선결 조건을 이행하라고 요구한 마감 시한인 15일 양측 모두 이렇다 할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대승적 결단과 계약 파기 사이에서 고민이 깊었던 제주항공은 선결 조건 이행이 있어야 딜 클로징(계약 종료)을 할 수 있다는 기존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을 설득할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국내 항공사간 첫 기업결합으로 관심을 모았던 M&A는 극적인 타결을 이뤄내지 못한 채 사실상 파기 수순을 밟고 있다.

◇‘규모의 경제’로 항공업계 위기 돌파 도전했지만 ‘좌초’

제주항공은 창립 15년 동안 국내 LCC 1위로 도약 항공여행의 대중화를 선도하는 업계 리더였지만, 아시아나항공과 이스타항공까지 M&A에 있어서 잇달아 쓴맛을 보게 됐다. 항공업을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키우려 했던 애경그룹의 퍼즐도 산산 조각이 났다. M&A가 불발된 가장 큰 이유는 ‘유동성’ 문제다.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서는 HDC현대산업개발보다 베팅 금액이 현저히 낮았으며, 이스타항공 인수 협상에서는 유례없는 위기를 불러일으킨 ‘코로나19’ 여파로 자금줄이 꽉 막혔다. 안팎으로 ‘동반부실’ 우려까지 제기되면서 협상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제주항공의 2대 주주인 제주도도 이런 우려로 이스타항공 인수에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제주항공부터 비상경영체제다. 국제선의 정상적인 운항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8개의 국내 정기선 운항으로 연명하고 있다. 매출 85%가량이 사라져 정부 지원으로 버티고 있다.

CEO 교체도 영향을 끼쳤다. 이스타항공 M&A를 주도했던 이석주 대표는 작년 12월 MOU 체결(696억원)때 보다 151억원을 깎은 545억원에 지난 3월 인수 계약을 성사시켰다. ‘코로나19 효과’를 봤지만, 그로부터 4개여월이 지난 현재 코로나19는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고, 5월17일 애경그룹 임원인사로 M&A를 주도했던 수장이 교체됐다. 제주항공에 새로 부임한 김이배 대표이사 사장은 제주항공의 ‘규모의 경제’ 실현보다 정상화 과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 이스타항공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 진실공방으로 M&A ‘신뢰’ 깨져

양측의 갈등이 정점에 달해 ‘신뢰’가 무너진 것도 걸림돌이 됐다. M&A 무산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260억원 규모의 임금체불과 이스타항공의 지난 3월 셧다운 책임 여부를 놓고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노조 측이 진실공방을 벌였다. 심지어 양사의 사장이 나눈 대화 녹취록까지 공개되는 등 M&A 계약 당사자간 지켜야 할 기밀 유지 약속이 어그러졌다. 최근 이스타항공 노조는 제주항공의 운수권 배분에 대해서도 특혜를 받았다고 음해하는 등 비방전을 이어갔다.

260억 규모의 이스타항공 체불임금과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가의 의혹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스타항공 측은 ‘지분헌납’으로 체불임금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귀속되는 금액을 놓고도 제주항공은 80억원, 이스타항공 측은 200억원대로 차이를 보였다. 제주항공은 입장문을 통해 “매수하려고 하는 지분의 정당성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며 “해당 지분 인수에 따라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결국 이상직 의원이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협상에 직접 나서거나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지분 헌납 외에 창업주로서 사재출연 등 추가로 더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을 책임지고, 제주항공이 받아들일 만한 대안을 더 내놔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자금줄이 막혀 더는 내놓을 게 없다면, 진정성 있는 자세라도 보여야 제주항공도 인수 쪽으로 마음이 기울 텐데 그러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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