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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황현규 기자] 성인 남성 두 명이 나란히 걷기 어려울 정도인 서울 성북구 월곡동의 한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이웃집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이 나온다. 이 곳에 25년째 사는 장선순(79)씨는 저녁 7시만 되면 폐지를 줍기 위해 동네에 나선다. 4시간 동안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버는 돈은 2000원 남짓. 작년 여름 대낮에 폐지를 줍다 더위로 쓰러진 이후 해가 진 뒤에만 밖을 나간다.
장씨의 80년 인생은 지긋지긋한 가난과 늘 함께였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8살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밥 해먹을 돈이 없어 이웃집 밭에서 감자를 캐먹으며 지냈다. 고향 충청도 공주에서 남편과 만나 21세에 결혼한 뒤에는 소쿠리와 돗자리를 떼다 노점 장사를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남편과 월곡동에 도자기 가게를 차렸다. 그러나 차린 지 10년도 안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가 터져 가게는 망했고 남편은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1년 가까이 누워 있는 남편 병수발을 들며 장씨는 고물과 폐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장씨는 당시를 “걸어 다니면서도 눈물이 줄줄 흐르던 때”라고 돌아봤다.
장씨는 이렇게 모은 돈을 지난 2015년부터 매년 월곡1동 주민센터에 기부했다. 기부액은 △2015년 7만2970원 △2016년 10만6260원 △2017년 8만2710원 △2018년 38만1180원으로 총 64만원이 넘는다. 올해도 형편이 되는 대로 기부할 예정이다. 성북구청은 지난 16일 김씨에게 유공구민 표창장을 수여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만원 지폐도 아니고 1000원 지폐와 동전만 가득 찬 봉투를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감탄했다.
억(億) 단위 기부 소식이 종종 들려오는 가운데 남을 도울 생각조차 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소액이나마 불우이웃과 나눠 온 할머니의 소식이 알려져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24일 월곡동 집에서 만난 장씨는 “내가 능력이 없어 고작 이 것밖에 못 버는 걸 어떡하냐”며 “입고 먹는 것 아껴 번 돈 인 만큼 내 10원은 남들 10억원 만큼의 가치”라고 말했다. 집 기울어진 부엌의 철제 선반대에는 장씨가 고물을 주우며 모아 둔 놋그릇과 냄비 20개가 수북히 쌓여있었다. 입고 있는 옷도 속옷 빼고는 남들에게 얻은 것이다. 밥상 반찬도 2개를 넘지 않는다. 이날 아침 장씨가 먹은 반찬은 김과 김치가 전부였다. 장씨는 “최소한으로 먹고 입으면 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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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는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기부금이 쓰이길 기대한다. 그는 “TV에서 배고픔에 떠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미어져 기부를 결심했다”며 “배고팠던 내 어린시절과 자식들에게 못해 준 게 떠오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장씨는 슬하에 아들 3명을 뒀다. 어느 덧 50대가 된 아들들은 인천·김해·충주에 흩어져 지낸다. 자식들에게는 전혀 손을 벌리지 않는다. 장씨는 “각자 살기도 빠듯한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몸이 허락하는 한 내 밥벌이는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기부는 가족도 모르게 이뤄졌다. 남편 유용식(82)씨는 “아내의 기부에 내가 10원도 보탠 게 없다”고 언급했다. 유씨는 지하철 택배일을 한다. 하루 일당 2만원이 채 넘지 않는다. 유씨는 “집사람이 폐지 줍는 일을 그만 했으면 하는데 도통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7평 남짓한 부부의 마당에는 지난주부터 모은 폐지와 고물이 모여있었다. 키 148㎝에 몸무게 38㎏인 장씨는 본인 몸보다 높이 쌓인 폐지를 가리키며 “이렇게 다 팔아봐야 1만원도 안 나온다”며 “폐지 1㎏에 50원”이라고 말했다. 장씨 부부는 이날 “손님이 집까지 찾아왔는데 줄 게 없다”며 포도 한 박스를 급히 사왔다. 한 박스에 담긴 포도 5송이의 가격은 9000원 남짓이었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할머니의 선행이 감동을 주고 있다”며 “소액 다수 기부문화 활성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