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3.1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이 때, 남북한 간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만큼 북한으로 간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남북통일이 이뤄져야 진정한 한민족의 독립이 완성될 수 있다고 봅니다.”
중앙부처 공무원으로 30년을 일해 오면서도 휴일과 휴가를 이용해 틈틈이 아마추어 역사가의 길을 걸어온 정상천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운영지원과장은 2019년을 맞이하는 감회가 그 누구보다 새롭다. 임시정부에서 파견돼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외교활동을 통한 독립투쟁을 벌였던 서영해 선생 연구에 매달려온 정 과장은 이달중에 <파리의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라는 책을 출간하며 첫 결실을 내놓기 때문이다.
경북대 사범대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한 정 과장은 공무원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1989년부터 1998년까지 산업부에서 통상업무를 맡았다. 이후 통상업무가 외교부와 합쳐지면서 외교통상부에서 15년간 근무했고 지금은 국가균형위에 파견나와 있다. 공직생활 중이던 1994년부터 1996년까지 3년간 국비 유학생으로 프랑스 파리 제1대학(팡테옹 소르본느)에서 역사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과 프랑스 경제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프랑스 외교부 자료를 찾아보다 우연히 일제 치하 프랑스와 유럽에서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를 접하면서 역사 공부에 매달렸다.
특히 당시 자료에서 프랑스 외무부 아주국장과 면담했던 `상하이임시정부 주불(駐佛)대표`라는 명함을 발견한 뒤 그 주인공인 서영해에 매료됐다. 임시정부 내 외교독립론자로 널리 알려진 이승만이나 김규식, 조소앙 등에 비해 부각되지 못했던 서영해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정 과장은 “서영해는 해방 후 북한으로 건너갔다가 1963년쯤 김일성의 해외파 숙청 당시 돌아가셨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탓에 그의 활동과 공적이 알려지지 못했던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또 서영해의 강직함에도 이끌렸다. 그는 “장개석 대만 총통의 눈치를 보느라 1934년 제네바 국제회의에서 발표할 보고서에서 `만주가 옛 고구려 땅이었다`는 문구를 삭제한 이승만에게 대노하거나 해방 후 경교장에서 유유자적한다며 김구 선생을 꾸짖는 등 서영해는 특유의 강직함으로 입 바른 소리를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북으로 가서도 김일성을 비판하다 숙청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정 과장은 서영해의 유품을 찾다가 1985년 별세한 미망인 황순조 여사가 끝까지 가지고 있던 앨범에서 1938년 백범 김구가 일제 밀정에게 피격된 `남목청 사건` 이후 병원에서 치료 후 거의 완치된 사진을 발견했다. 이는 <백범일지>에 글로만 기록된 사건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것으로 백범기념관에도 없는 자료였다. 그 외 서영해의 유학시절 사진, 경교장에서 김구와 찍은 사진 등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는 “내 연구와 저술이 서영해를 비롯한 해외 독립운동가 연구에 물꼬 역할을 됐으면 한다”며 “이를 계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서영해 선생 등 해외 독립운동가에도 관심을 가지길 바라며 보다 체계적이고 학술적으로 규명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유럽쪽 독립운동은 서영해 외에 뚜렷하게 활동한 인물이 없지만 생계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했던 현지 교민들과 유학생들은 모두가 해외에서도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들의 활동이 재조명되길 바랐다.
아울러 정 과장은 “서영해처럼 북으로 건너가거나 납치된 탓에 우리에게서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이 많다”며 “이런 분들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남북간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북한과의 문화 교류가 가능해진 만큼 독립운동사에 대해 학술 차원에서 남북간 교류를 활성화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 “후에 친일파로 확인됐는데도 건국훈장을 받은 인물들이 많은데 서영해 선생은 독립운동가 서훈에서 불과 5등급으로 분류돼 건국훈장 애족장밖에 받지 못했다”며 이렇게 평가절하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평가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정 과장은 스스로를 `일요일의 역사가`라고 부른다. 평일엔 업무에 집중하느라 주말에만 역사를 공부하기 때문. 그는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공무원이 (업무와 관련없는) 책을 쓰면 ‘일 안하고 딴 짓 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며 웃었다. 정치외교사학회, 프랑스학회, 학국역사학회 등 여러 학회 활동도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 참여한다. 그는 지금까지 10개 이상 논문을 썼고 2014년엔 이를 엮어서 `한불관계 130년간의 교류`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김구 선생의 비서실장이던 민필호 선생의 아들이자 신규식 임시정부 국무총리의 외조카인 민영백 (주)민설계 회장이 비공식적으로 독립운동가들의 가족사에 대한 책을 내고 싶다고 제안했다”고 귀띔한 뒤 “독립운동을 하면 3대(代)가 망한다고 했다는데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애환이나 고통, 생활고 등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며 기회가 된다면 이들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향후 연구 계획도 살짝 소개했다.
끝으로 3.1절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대한 감회를 묻자 그는 “아직 우리 민족의 진정한 독립이 완결됐다고 보지 않는다”며 “어떠한 외세의 영향 없이 스스로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독립이라고 본다면 이 땅에서의 진정한 독립은 남북이 통일될 때에야 완성된다고 본다”며 속히 통일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아울러 `어떻게 이룬 독립인데 내가 3.8선을 머리에 베고 누울 지언정 남·북한 각각이 단독정부를 세우는 걸 인정할 수 없다`며 해방 후 임시정부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던 김구 선생의 발언을 후대 모두가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